기독교 세계관과 성경(2)

작성자 외마
작성일 17-09-03 18:40 | 조회 598 | 댓글 0

본문

(1)하나님의 구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인간의 상태의 회복으로서(속죄, 화목, 용서, 칭의, 거룩), 인격의 재통합을 뜻한다. 즉 인간은 구원을 얻어 다시금 하나님이 원래 설정한 목적에로 나아가도록 과오의 극복, 죄와 타락으로 인하여 발생된 인간적인 삶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

 

(2)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분이다. 그는 공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뜻을 밝혀주셨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인생의 출발, 즉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그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속죄를 통하여 화목 됨을 의미하며, 누구든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자는 죄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입게되며, 하나님과 화목 된 관계로서 새로운 피조물로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고후5:17). 역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란 인간의 재창조를 의미한다. 타락된 인간의 본성으로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으며,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룰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인 능력상실을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깨어진 인격의 재통합 또는 재결합의 의미를 가진다.

 

(3)이것은 믿음으로만 경험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지며 동시에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이다. 바울에게서는 칭의(稱義)의 관계로 설명되었다."복음에 의()가 나타났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고 증거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타락된 인간을 원상태로 되돌리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재창조를 가능케 하는 출발이 되는 것이다(고후5:17).

믿음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의지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를 내어준 자를 위하여 다시 나를 내어줌이다. 죄에서 자유하게 한자를 위한 자유가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하나님이 이와 같이 예수를 통하여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계속적인 진행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속되는 문화적 명령으로 이해한다(1,28). 그것은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인간들이 계속해서 가꾸고, 다스리며, 관리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번식하고 충만하여 인간으로의 복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4)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사상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현재적 차원과 미래적 차원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이다. 미래적 차원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이루어질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이루어지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은 이 땅의 역사와 문화와 관계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에 주인으로서 역사와 문화 속에 그의 복음이 전파되고, 복음의 가치가 발휘되는 그곳에 함께 하시며, 다스리신다. 신학은 그리스도는 그의 나라를 교회를 통하여 말씀과 성례로 다스리신다고 규명한다. 예배를 통하여 세례와 성찬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그곳에 임하여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언제나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하고 선전하며, 전파하고 가르쳐야 할 사명을 가진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그 나라를 교회를 통하여 경험하며, 선망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책임도 또한 바로 이러한 나라를 세상에 전하고 경험하도록 전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들을 교회로 모은다. 교회는 다시금 그들을 훈련시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일꾼으로 봉사하도록 세상으로 보낸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도움으로 믿음 안에서 살며,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일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성령은 하나님이 인간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인격적인 권세이시다. 성령은 닫혀진 인간의 영안을 열어주며, 하나님의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신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실 뿐 아니라 그 길을 따라 가도록 인간의 배후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개인적으로 각각의 인생의 비전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준비하며 살게되는 것이다.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모든 활동은 창조적인 활동인 것이다. 인간은 여전히 꿈꾸며, 일하며, 계획하며, 생산하며 활동하는 존재로 이 땅에 살아간다. 인간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창조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에는 원래 빛과 어두움, 선과 악의 대립적 관계에서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1,1-3). 그리고 이러한 대립적 관계에서 투쟁의 힘으로 나타난 것이 하나님의 영의 작용이다.

 

신약에 와서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는 새로운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공동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성령은 의사소통의 능력으로 이해된다. 예루살렘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성령에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하나가 되어 주의 일을 위하여 헌신하는 자들이 되었다. 이때에 나타난 성령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의 힘이 넘쳤고, 그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섬기는 사랑의 봉사가 넘쳤다.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으며,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시작된 새로운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에 봉사하는 일꾼으로의 부르심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관계에서 볼 때 인간의 타락은 질서의 이탈행위이며, 창조사역의 근원적인 힘의 상실을 뜻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위한 방향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따라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죄는 소외된 인간을 경험하게 할뿐이다. 구원이란 바로 소외된 인간존재가 소외상태에서 극복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안에서 새로 지음 받은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능력이신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다시금 그의 나라의 건설에 동참하는 것이며, 원래 창조사역에서 부여하신 삶의 책임을 뜻하며, 그것은 예수가 이미 제시하신 하나님 나라의 윤리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앙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믿음, 소망, 사랑의 모습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인격적인 신앙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적인 삶은 믿음, 소망, 사랑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살전1,2-4).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가운데서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하나님의 평화(平和)를 위하여 사랑으로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로서 제시된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증거와 맞물려 있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자녀들을 어떤 사람들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 그 대답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우리의 교사로서의 봉사의 의미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창조적 세가지 질서의 의미).

 

5)인류의 역사와 기독교 종말관

 

(1)기독교 종말의 의미

창조론의 관점에서 보면 역사세계의 끝이며,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완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역사의 마지막에 일어날 중대한 사건은 크게 네가지다(부활/재림/심판/영생). 이것은 그리스도가 완성한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으로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뜻한다.

기독교교육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한 기독교 종말론이 보여주는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이러한 기독교적인 종말의 사건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게 해야 한다.

 

(2)종말론과 크리스찬의 삶의 태도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종말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신앙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두 극단의 종말론적인 삶의 태도가 있다.

자유주의 신학의 입장/ 극단적인 보수주의적 입장(세대주의)

개혁신학적인 입장은? 우리의 종말신앙은 어떠해야 하는가?

성취와 실패 사이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인간적인 경험은 교만과 좌절이다.

그리스도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심은 양극단의 한계를 극복하고 삶의 현실을 이겨가게 하는 지혜가 된다. 이것이 종말신앙의 의미이다.

기독교의 종말신앙은 신앙의 파라독스적 의미를 전제한다. 4,18에 아브라함은 "바랄 것이 없는 가운데 바라고 믿었다"는 말씀에서 기독교의 종말신앙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11,1-3).

 

[ 결 론 ]

지금까지 우리는 기독교 세계관의 교육적인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세계관적인 이해는 교사의 신앙관이 되어야 하며, 이것은 또한 교사들이 성경을 가르칠 때 성경을 해석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되며, 동시에 아이들이 이해해 가야할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윤곽이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세계관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은 청소년 초기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을 근거로 자신의 신앙관을 확립하고, 세상의 경험과 교육과정을 통해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 또는 이데올로기를 접하게 될 때에 그것들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며, 그 가치들을 분별하는 자기신앙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장세대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세 가지 복음의 가치를 중심으로 그것을 익히고, 훈련하여 그러한 신앙적이 모습을 인격적으로 가지게 해야하며 그러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일에 봉사하는 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적 과제 수행에 교사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은 언제나 작용하는 교육행위의 근본바탕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책임 있는 신앙교육, 성경교육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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