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마이클 호튼)-3

작성자 외마
작성일 17-08-20 10:05 | 조회 6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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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기독교와 과학: 서로 가까워질 수 없을까

 

* 과학은 천주교보다 개신교(칼빈주의)에 의해서 더욱 촉진되었다.

* “하나님의 두 책(자연과 성경)”은 서로 보완적이며 상충되지 않는다.

* 초기 과학자 대부분은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방식을 겸허히 해석하려 하였다. 그러나 계몽주의를 지난 지금은 과학이 하늘의 일 모두에 대한 진리의 열쇠를 쥐고 있느냥 성경을 버리고 스스로를 계시자로 만들고 있다.

 

과학이라는 종교

* 오늘날에는 과학이 종교로 탈바꿈하였다.

 

하나님의 두 책

* 신교도들은 섭리교리를 통해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라는 하나님의 두 책을 조화시켰다. 천주교의 믿음과는 다르게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활동 못지않게 일반 법칙을 통해 일하신다.

 

정신

* 종교개혁가들은 과학은 교회의 권위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권위로부터 자율성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이는 예술이 종교, 정치, 철학, 혹은 실용적인 목적에 기여해야한다는 것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우리는 사람이 (그리고 과학이) 자연이나 성경을 오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을 이용함에 있어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겸손해야 한다.

* “일반 은혜가 구원의 은혜가 아니며 일반 계시도 특별 계시의 사실을 필요로 하거나 특별 계시의 사실과 상충되지 않는다.” (183p)

 

상식실재론

* 과학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논증 방식은 상식이다. (과학과 미신을 구별해야 한다.)

* 상식실재론은 현실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과, 그 현실 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합리주의와 관념론은 마음에 독립된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증거주의

* 상식실재론을 통해 성립된 증거주의는 (초기) 프린스턴 신학교의 변증학으로 흡수되었다. 이는 우리가 일상생활엣 사소한 일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진리를 결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

 

답변할 준비 갖추기

* “영적인 표현이 아니라 상식적인 대화를 통해 비신자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영성 회복

*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삶과 이 세상에 직접 관여하신다는 확신을 회복하기 위해 초자연적인 일들이 끊이없이 발생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197p)

7장 기독교와 직업: 일과 휴식

 

* 쾌락주의 세계관에서는 일의 중요성을 상실함과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중요성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성도 상실하게 된다.

* 우리에게 하나님이(그분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우리의 일상적인 노동은 그 의미를 잃게 된다.

 

경건주의의 문제

* 교회 일의 참여로 영적 건강 상태를 평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 “종교개혁은 교회와 관련된 모든 활동이 세상 안에서 실제로 섬기기 위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일이라는 입장에 서 있었다... 성도를 섬김으로써 성도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교회다” (209p)

* “기독교인이 월요일 아침에 일하러 가는 목적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회심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 정해 놓으신 자신의 소명에 종사하기 위함이다... 이 말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은 복음 전도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일이 지루하고 무의미해서 어쨌거나 복음 증거를 위한 기회로 삼아도 무방한 것처럼 일을 하찮게 여길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210p)

* “자신의 일을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이웃에 대한 섬김으로 이해한다면, 가장 현세적인 일도 의미가 있다.” (211p)

 

소명에 대한 성경적 기초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회복이 분명히 이루어졌으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일상사에서 소망이 있[].” (215p)

* 일은 더 이상 거룩한 활동은 아니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주신 선물(창조의 규정)이다.

* 일은 하나님께서 창조 질서에서 정하신 제도로 타락에 대한 저주가 아니라 존엄성의 표지로 주신 것이다.

 

주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 휴식을 누리며, 영원한 안식을 바라본다.

* 우리는 쓸데없는 시간낭비를 줄여야 하며, 한편 스스로 즐길 수 있는능력도 필요하다.

* 주일을 거룩하다 하는 것은 날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활동들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가정 문제

* 주일에는 세상적인 오락을 잠시 접으라. 가족과 함께 설교들은 내용을 나눠라.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오락을 찾아라.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시간(대화)을 가져라. ‘가정의 밤

* “우리는 심지어 교회보다 자기 가정을 제일 우선시해야 한다.” (230p)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

* 예술, 과학, 철학, 정치와 마찬가지로 결혼생활은 그 체로 목적이며 창조에 뿌리를 두는 것으로 더 이상 종교가 결혼을 정당화 할 필요가 없다.

8장 기독교와 현대 세계: 미쳐 버린 세계

 

현대성: 시기적으로 어느 때를 말하는가

*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대성: 그것은 무엇인가

* 현대성의 특징: 진보에 대한 신념(르네상스, 헤겔, 칼 마르크스, 존 듀이, 프로이트, 찰스 다윈 등)과 보편이성(흄의 경험주의, 칸트의 합리주의)

 

현대성은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 도시와 행정 중심지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경향, 비인격적 기계적인 관계들, 즉흥적 커뮤니케이션, 개성을 파괴시키는 대중문화, 미디어의 악영향에 노출

*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는 극단적인 결별이 아닌 분별력을 가지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복음주의자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 심지어 신학자와 목회자도 현대성에 굴복하여 인종차별주의, 환경착취, 노예제도, 성차별주의, 과학 기술/권력 숭배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기독교를 사용한다.

*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시인하고, 회개하며 다시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 우리는 이 세상에서 참된 변화를 위해 힘쓰고 자신의 소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국(구원)의 완성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실현될 것임을 소망해야한다.

 

결론: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의 소유는 아니다

 

성경의 창조 교리: 세상 안에 있다

*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세상을 본존하시며 선악 간에 주관하신다.

 

성경의 구속 교리: 하지만 세상의 소유는 아니다

*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에서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이다. 세상은 그 자체로서 기독교의 적이 아니다.

* 영지주의의 이원론에 반대하여 칼빈이 밝힌 대로, 문제는 본성이 아닌 본성의 타락이다.

* 세상성은 단순히 직업, 음주, 흡연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진리(설교)가 왜곡되고 예배가 소비자 중심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 우리는 이미 거룩해졌으나 계속 거룩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창조와 구속의 교리가 기독교 세계관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1) 창조와 구속 -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창조 시에 첫 사람은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받았다. 그러나 타락 후 즐거웠던 일은 노고를 동반하게 되었고 더 이상 일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간주할 수 없게 되었다.

-타락 후 거룩한 것과 범속한 것 사이의 구별이 생겼으며, 이 땅의 어떤 도성도 하나님의 나라로 여겨질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의 도성은 역사가 끝나더라도 결코 하나님의 도성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일이나 일반제도를 신성하게 만들기 위해 기독교적인”, “구속적인등의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다. (범속한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 귀한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신성해 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예술, 문화, 정치와 관련된) 일이 복음전파와 교회와 연관되지 않아도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 앞에 정당한 것이다.

 

(2) 일반 은혜와 구원 은혜

-“일반 은혜와 구원의 은혜를 혼동할 경우, 우리는 사업에서의 성공을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표시로 착각하고,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홍수를 하나님이 내리신 정죄의 표시로 생각하기 쉽다.” (276p)

-“심지어 피조물이 단호하면서도 격렬하게 하나님을 대적할 때,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바지할 것이다. (76:10)” (277p)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망각한 채 일반문명의 건설과 (문명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는) 지상 낙원의 재건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신자는 자신의 믿음, 태도, 생활방식에서 스스로를 뚜렷이 구별하라고 요구받지만, 자신이 생활하는 현세적인 환경을 거룩한 공간으로 변화시키라고 요구받아서는 안 된다.”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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