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과 코이노니아(성도의 교제)

작성자 외마
작성일 17-09-02 07:34 | 조회 565 | 댓글 0

본문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2:1-3)

 

코이노니아는 삶()을 나누라는 뜻

코이노니아는 교회의 3대 직무 - 케리그마(Kerygma,전도), 디아코니아(Diakonia,봉사), 코이노니아(Koinonia,교제) - 가운데 하나로서 '친교, 나눔' 등을 뜻하는 헬라(그리스) 말입니다. 이 말과 또한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구약에서보다는 신약에서 더 자주 쓰였습니다. 이 말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이 말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이 땅에 만드시되 코이노니아의 대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성경은 왜 하나님이 인간을 이 땅에 만드셨는지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성경 전체의 가르침으로 보면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인간을 사랑과 교제의 대상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코이노니아라는 말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줄 알아야 하며, 또한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도 깨달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코이노니아의 극적인 실천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코이노니아'하시기 위해 그 높은 보좌에서 이 낮고 낮은 땅으로 직접 내려오신 것입니다.

 

둘째, 이 말은 성도와 성도 사이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우리 인간은, 특히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야 하며, 또한 본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듯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교회에 주신 큰 사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나누며' '교제'하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 말은 성도와 세상과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과 나누며 전파하며 그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신의 삶의 뿌리를 두고 사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천국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4:12>

 

크리스천은 하나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생명', '사랑', '평강'(이 모든 것을 '샬롬'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이 우리를 통하여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가야 합니다. 마치 그 옛날 에덴동산으로부터 발원한 강이 네 근원을 이루며 온 세상으로 흘러나갔듯이 말이죠(2:10). 이 강의 흐름을 우리는 코이노니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8에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정확히 빚에 관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성경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희년 말씀을 어기면서 많은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후에 땅과 집을 스스로 팔아 서로 책임지는 코이노니아(koinonia)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보면 초대교회 안에서는 서로 빚을 지지 않았거나, 설사 빌려 주어도 이자를 받지 않고 갚을 수 없는 빚은 탕감해 주었거나, 오히려 다른 그리스도인의 갚을 수 없는 빚을 대신 갚아 주는(무르기 해주는) 사랑의 삶을 살았으리라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사를 살펴보면 교회가 노예 신분인 그리스도인의 몸값을 대신 치르고 자유롭게 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빚의 노예가 된 같은 그리스도인을 빚에서 자유롭게 해 주는 일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초대교회는 서로 빚을 지지 않고 서로의 삶을 책임지는 사랑과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나누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성경은 모든 이자를 금하지는 않고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목적의 생산적인 대부에 대해서는 이자를 통제 하에 허용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성경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자립할 수 있도록 이자를 받지 말고, 갚을 수 없는 빚은 탕감해 주며, 이자 자체를 금하지는 않고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목적의 생산적인 대부의 이자는 통제 하에 허용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12:4-5)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6:2)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4-25)

 

사례 18) 코이노니아의 실천공동체

코이노니아 동역회(Koinonia Partners)는 미국 조지아주 아메리쿠스에 있는 대안기독공동체이다. 1942년 클래런스 조단과 마틴 잉글랜드가 시작하였다. 조단은 남침례교 신약학 교수였는데, 교수직을 사직하고는 그의 신앙과 신학을 일치시키는 삶을 위해 그가 처한 곳에서 가장 가난한 자들이었던 흑인들과 함께 살고 예배하며 일하는 공동체를 시도한 것이다. 농업이 주된 그곳 정황을 고려, 농장을 사서 유기농업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공동체의 주된 소득원이라 한다. 땅콩, 호두, 콩 등을 생산해서 팔고 가공품으로 캔 만드는 공장시설도 있고 한 해 60만 불 소득을 올리기도 한단다. 이 공동체에 참여하려면, 단기회원은 3개월, 장기지원 수련회원은 6개월까지, 1~2년 수련회원의 과정을 거쳐 본인의 결단아래 정회원이 될 수 있다.

 

이 공동체의 회원들은 아침은 각자 집에서 해먹고 기도회도 자율적으로 한 뒤 9시에서 1140분까지 오전 노동을 함께 한다. 점심은 공동식사인데 이때 광고, 소개 등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230분에서 4시 오후 작업 이후 각종 소그룹 모임이 이어진다. 다른 공동체들에 비해 노동시간이 짧다는 느낌을 가졌었는데, 일년 중 상당기간 섭씨 40도를 웃도는 남부의 날씨를 고려할 때 더하기 힘들지 싶기도 하다.

 

이 공동체는 철저하게 공동재산제를 실천한다. 일단 다 모으고 자녀수나 연령 등을 고려하여 필요한 만큼 재분배한다. 초대교회의 오이코스 그대로이다. 검소한 생활, 자발적 가난의 삶이 가장 두드러진 공동체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좀 불편하게 살자는 것이다. 재생용지 사용은 기본이고 찜통같은 남부의 기후에서 에어컨 없이 생활한단다. 댈러스에서 6년을 살아본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 이게 되는구나. 그래도 안 죽는구나.’ 그걸 알았다. 이 사람들의 실천을 듣고 나서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화해하고 나누는 삶을 지향한다. 해서 자선을 위한 기금마련에 열심이다. 특히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서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사역을 시작했다. 농가주위 가난한 흑인들에게 20여 년 간 170여 채의 집을 지어주었다 한다. 오이코스를 지어주는 오이코스다. 1968년 밀라드 풀러 가족이 공동체로 오면서 자극받은 운동인데 풀러는 1976년 공동체 가까이에 자선을 위한 헤비타트운동본부를 건설하고 독자적으로 빈곤층 주택공급사역 올인하고 있다. 현재는 전 세계 450 지회가 있다하니 가히 전세계적인 규모의 운동이라 하겠다.

 

코이노니아 동역회는 농장 일을 할 때 인근의 가난한 흑인 농부들을 초청한다. 소작농의 개념이 아니고 정당한 이익을 함께 나누는 선한 포도원 주인의 방식인데, 궁극적으로 이들이 자립해서 살도록 배려한다. 어린이 양육센터는 저소득, 파탄가정의 아이들을 생후 6개월에서 여섯 살까지 돌보고 있고 저소득 청소년들의 방과 후 생활지도를 위해 방과 후 학교 (after-school)’3~5시까지 운영한단다.

 

이 공동체는 여러 교파 사람들이 모여 있다. 목사님 일곱 분에 은퇴선교사 세 분이 번갈아가며 예배 인도를 한다는데, ‘번갈아이거 쉬운 일이 아니다. 번갈아 하는 한 권력은 집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소유욕심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야 가능한 일인데, 이 자유함에서 권위조차 자발적으로 나누려는 자세. 이게 원안으로서의 교회의 모습이라 생각된다.

 

[참고] http://www.joyphilippines.org/bbs/board.php?bo_table=wt_dt_data&wr_id=13

 

  


생각하고 이야기해 보기

 

1) 코이노니아의 뜻 두 가지를 이야기해 봅시다.

 

2) 초대교회의 코이노니아는 어떻게 실천되었는지 말해봅시다.

 

3) 6:2을 외워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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