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경제관을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론: 중간공리로서의 책임사회 이념
본문
성경을 고찰함으로 우리에게는 명백한 입장이 주어졌기는 하나 고대의 시간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경윤리를 그대로 현 경제체제에 적용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물론 앞서의 성경적 고찰은 시, 공을 초월하여 적용될 수 있는 포괄적이고 핵심적인 경제윤리관을 제시했지만 이는 추상적인 규범이 되는 성경적 경제관, 즉 희년과 나눔의 경제관을 현실 경제체제와 접목시키기 위해서 다리 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추상적 원리와 구체적 실천사이에 다리를 놓는 개념을 중간공리라고 하는데, 경제윤리에 있어 책임사회 이념이 적절한 중간공리의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여기에서 관심하는 것은 여러 이념들의 대립상황 속에서 어느 한 사상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쪽도 손상시키지 않는 ‘책임사회 이념’을 재평가함으로써 우리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다.
1) 책임사회 이론의 발생, 반박, 재평가의 배경
(1) 책임사회론의 발생
1920년대에서 30년대, 사회주의의 승리와 파시즘의 대두라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기독교의 사상을 형성해 나간 사람들은, 사회주의의 승리를 복음적 심판이요 약속으로 받아들였던 죠셉 로마르카가 있었고, 사회주의의 승리를 러시아 혁명을 실패한 러시아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받아들인 베르자예프가 있었으며, 혁명의 시기에 혁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정의실현을 모색했던 라인홀드 니이버, 마르크스와 레닌을 염두에 두고 신학을 연구했다는 칼 바르트 등이 있었다.
이들의 신학적 노력은 1948년 암스텔담 WCC창립총회 이후 ‘책임사회론’으로 정립되었다. 60년대 후반 혁명적인 기독교 사회상이 대두되기 전까지 세계교회의 공식적인 사회사상으로 받아들여졌던 ‘책임사회론’은 냉전시대 동서대립을 반영한 중간적 입장으로 평가되었다. 책임사회론은 암스텔담 대회에서 선언되었듯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모두를 거부하고 이러한 양극단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벗어나 ‘정의’와 ‘자유’가 서로 상대방을 파괴하지 않는 새롭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기독교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1954년 제2차 에반스톤 총회에서 몇몇 국가에서 ‘복지국가’ 혹은 ‘혼합경제’가 새로운 경제생활의 유형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를 자본주의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2,30년 전의 자본주의와 다르다는 새로운 뉘앙스의 책임사회론으로 바뀌었고 이에 WCC가 서구 자본주의를 옹호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2) 책임 사회론에 대한 반박 : 혁명의 신학
책임사회는 1961년 뉴델리 대회까지 계속되었으나 이후 제3세계 교회의 대거 진출과 동유럽 교회의 WCC가입으로 WCC의 지형이 변하고 자본주의 국가들 내에서의 혁명적 위기가 높아짐에 따라 1966년 제네바의 ‘교회와 사회 세계대회’, 1968년 제 4차 웁살라 총회를 기점으로 기독교 사회사상의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1966년 대회는 책임 사회론을 승인하고 있지만 현대의 세계정세는 인간의 불의한 기존질서에 혁명적으로 대항할 것을 강제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리챠드 사울을 필두로 한 젊은 신학자들은 책임 사회론을 서구 개량주의라고 비판하면서 혁명신학에 기반한 메큐메니칼 운동론을 제시, 변화를 가속시켰다. 웁살라 총회는 ‘ 경제, 정치구조의 혁명적 변화’가 요구됨을 인정했으며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질서’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다. 이러한 변화는 75년 나이로비 총회에서 공식화되고 83년 뱅쿠버총회까지 계속되었는데, 교회는 서구 자본주의체제와 초국가적 기업의 세계경제 지배로 표현되는 억압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급진적인 민주운동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기독교 사회사상의 요지였다.
(2) 책임사회 이념의 재평가
그러나 1985년을 지나면서 기존의 혁명적 전망이 쇠퇴하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근데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가 현실화되면서 정치․경제정의의 실현에 대한 혁명적 기독교 사상은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1988년 서울 대회에서는 세계적인 정치․경제변화에 새로운 분석도, 새로운 관점도 제시되지 못했고, 91년 제7차 켄버라 총회는 소위 자본주의 국가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듦에 따라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많은 희망이 표현되고 있지만 시장경제체제 역시 새로운 사회제도 없이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조성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입장만이 표명되었다.
JPIC서울대회와 지난 캔버라 총회가 이렇듯 정체성의 위기에 대해 침묵을 지켰고 하나의 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것은 탈냉전시대 이후 변화에 반응하는 교회의 입장이 일치되고 있지 못함을 암시한다.
최고 WCC기관지인 <에큐메니칼 리뷰>를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논문들은 모두 기독교 사회사상의 정체성의 위기를 인정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주된 움직임은 1966년 이전의 기독교 사회사상, 즉 책임 사회론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고 기독교가 현실 사회에 대해 상대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며 다원주의적 관점ㅇ르 수용해야 함을 암시적으로 주장한다.
예를 들어 프린스턴 신학과의 사회윤리학자인 찰스웨스트 교수는 “크리스천도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 영향을 받고 있지만 신앙에 기초한 실천 속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만나는 가운데 끊임없이 교정되어야 한다.”는 책임 사회론적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혁명적 신학이 그 표현만큼 실제적인 내용과 실천에서는 그리 급진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비판하면서 결론적으로 교회의 증거는 현실의 권력투쟁 속에서 ‘상대적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가지지 않고 성숙한 사랑의 실천으로 현사회의 질서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다 직접적으로 “억압받는 자의혁명이 결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바꾸지 못하며 인간의 계획과 운동만으로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 배웠다”며 애큐메니칼 노선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3) 책임 사회론에 대한 재평가
앞서의 배경에서 살펴보았지만 책임사회 이념의 발생은 당시의 세계적 상황에서 요청된 결과였다. 어느 곳에 있어서나 우리는 그곳에 있는 교회를 통하여 발언권이 없는 자에게 발언권을 주며 누구나 안주할 수 있는 가정을 마련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산업․농업․정차․직업․가정 각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남녀의 의무가 각각 무엇인지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예’와 ‘아니오’를 말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쳐 주옵소서 요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대해 책임사회 이념은 그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과 자기이웃에 대하여 하나의 자유로운 책임적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또한 그렇게 살아나가도록 부름을 받았다. 따라서 어느 국가나 사회에 있어서 책임 있게 행동하려는 인간의 가능성을 박탈하는 여하한의 의향이라도 그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그의 구속사업을 거부하는 행위다. 책임사회란 곧 사회의 자유가 정의와 공공질서에 대한 책임을 인지하는 사람들의 자유이며, 또한 정치권력과 경제적 세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그 실권을 행사함에 있어 하나님과 민중 - 정치와 경제는 이 민주의 복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인데- 앞에 책임을 지는 사회를 의미한다.
결국 책임사회 이념은 자유․정의․질서․힘 등의 규범을 망라한 총칭이며 또 동시에 그것은 역동적이 사회, 정치체제의 목표와 규범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 하에 이루어졌다. 자유와 정의, 사랑과 힘이 잘 조화되어 책임 있게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규정하는 이 책임사회 이념에서는, 인간이 정치․경제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인간이 생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이 인간을 위해 존재 하는것”이라고 피력한다. “현대적인 여러 조건 하에서 한 사회가 그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민중이 자기 정부를 통제하며 비판하며 변경하는 자유를 갖고 있어야 하며 , 권력은 법률과 전통에 의해서 책임을 지되 가능한 한 모든 지역사회를 망라하여 널리 분배 되어야 한다. 또한 경제적 정의와 기회균등의 대책도 그 사회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확립되어야 한다.”
2) 책임사회 이념의 한국적 적용
그렇다면 책임사회 이념과 이에 기초한 혼합경제론은 현 한국의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까? 책임사회의 이념은 여러 이념들의 갈등상황 속에서 이러한 갈등을 지양하고 이념들간의 대화를 통합하는 ‘하나의 발전하는 사회적 모델’로 제시된 것이기 때문에 분단의 상황에서 서로 다른 경제체제와 경제관을 가지고 갈등하는 한국에는 그 적합성이 큰 기독교 사회윤리 사상이다. 책임사회 이념은 정의와 자유가 서로 다른 쪽을 손상하지 않는 새롭고 창조적인 해결책으로서 제시되었으며, 기독교 교회들은 공산주의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이념들을 모두 거부해야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이 양 극단만이 유일한 방도라고 하는 가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기에 더욱 더 그러하다.
만약 인간의 자유로운 존재성을 보존하기 위해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면, ‘정의’는 그 근사치적 목적으로서 구현되어져야 하는 개념이기에 필요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책임사회 이념의 행동목표에, 정의와 자유는 근사치적인 목적이 되어 권력의 제한과 기회균등을 위한 구체적인 표적으로서 시사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국적 상황에서 우리 크리스천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어느 한 경제관을 이상화거나 맹신함 없이 자유와 정의를 변증법적으로 취하여 그 어느 하나의 손상함이 없이 ‘균형 있는’ 입장으로 기독교적 경제관을 형성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이와 같은 책임사회 이념의 자유와 정의의 변증법은 여러 가지 공헌 점을 지닌다. ① 이는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적인 혁명과 이를 왜곡하고 악용하는 전체주의적 관념론 사이를 구분 짓는 데 큰 도움이 된다. ②이는 고착된 규범도 아니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사회, 정치, 경제적 대안도 아니어서 윤리적 원칙과 구체적인 상황이 엮어내는 하나의 역동적인 성격의 규범으로서 융통성과 가변성이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아울러 책임사회 이념이 제시하는 다음의 윤리적 지침은 한국적 상황에 사는 크리스천이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책임적으로 참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첫째, 주와 인간에 대한 그의 계획을 증거 하는 교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그 어떠한 시도나, 하나님께 복종하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시도도 정죄한다.
둘째, 인간에게 사회를 형성하는데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 사실을 부인하는 그 어떤 주장도 정죄한다.
셋째, 인간이 진리를 배우고 전파하는 것을 방해하는 그 어떤 시도도 정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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