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과 안식과 휴식(1)

작성자 외마
작성일 17-09-02 07:04 | 조회 2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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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20:8~11)

 

 

안식일과 함께 끝난 천지창조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의 창조와 함께 완성된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인간이 "창조의 완성"이요, "창조의 면류관"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생각은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있어서 일곱째 날 곧 안식일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것은 창조의 수고를 끝내고 쉬는 날로 생각되었고 그 이상의 적극적 의미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일하는 하나님", "창조적인 하나님"으로 표상 되었습니다. 안식일에 그의 창조를 기뻐하면서 휴식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못하였습니다.

 

일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표상은 인간에 대한 표상으로 연장되었습니다. 조물주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일하는 존재로 표상될 때, 인간도 쉬지 않고 일하여 새로운 재화를 창출해야 할 존재로 표상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의 의미는 노동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데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을 계속하여 노동하도록 만들며 자연 속에 휴식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오늘날 현대인은 노동과 생산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현실은 삶의 의미를 노동과 생산에 있는 것으로 보는 표상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창조기사를 다시 한 번 반성할 때 "창조의 면류관"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이 평화롭게 안식하는 안식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육일동안의 노동 다음에 "쉬는 날"이라기보다, 모든 창조가 안식일을 향하여 진행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전츠바이크(Fr. Rosenzweig)에 의하면 안식일은 "창조의 잔치"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이 잔치를 위하여 하늘과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이 창조되었습니다. 창조기사에 의하면 창조의 매 일마다 저녁이 따릅니다. :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그러나 창조기사는 안식일 다음의 저녁을 말하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여 하나님의 안식일은 "저녁"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휴식과 잔치는 영원히 계속됩니다. 안식일은 모든 고통과 투쟁이 그치고 하나님의 영원한 평화가 다스리는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폰 라트"하나님은 그의 창조를 일곱째 날 그의 안식을 통하여 완성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어떤 의미에서 "창조의 면류관"이요 "창조의 완성"인가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기술하기로 하자 :

 

하나님과의 평화

이 날에 인간은 하나님이 "만유의 주"시요 창조자임을 인식합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교만을 버리고 자기를 하나님의 피조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교만을 버리고 자기를 하나님의 피조물로 인식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의 평화"를 가짐으로써 인간은 안식일에 "자연과의 평화"를 가집니다. 자연은 자기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그는 인식하고 더 이상 노동을 통하여 자연의 세계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연의 세계를 인간이 침해하거나 파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창조"로서 휴식하게 합니다. 그는 자연의 세계와 함께 휴식하며 "창조의 사귐"을 나눈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과의 평화" 속에 있는 동시에 "자연관의 평화" 속에 있을 때 그는 안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안식하심

그는 피조물을 위한 모든 활동을 완성하고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십니다. 그렇다 하여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 없이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피조물과 함께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그의 "안식"은 자기 혼자 가지는 안식이 아니라 피조물과 함께 가지는 안식입니다. 안식일에 그는 피조물 가운데에 현존하며 이 현존 안에서 안식합니다.

 

주의 날

인간은 물론 자연의 세계까지 하나님이 그들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안식일이 올 때 자연도 안식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교만이 사라지고 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자연의 평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억압과 파괴와 착취가 중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날에 하나님도 숨을 쉬지만(31:17) 자연의 세계도 숨을 쉴 수 있게 됩니다. 안식하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그들은 자신의 안식과 존립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모든 피조물이 기뻐하는 "주의 날"입니다. 이 날은 하나님이 "축복하신"날이요 "거룩하게" 하신 날입니다(2:3). 하나님과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사귐 속에서 안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이 "창조의 면류관"이요 "창조의 완성"이지 인간이 창조의 면류관과 완성이 아닙니다.

 

짐멀리(W. Zimmerli)에 의하면 안식일 계명은 두 가지 동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 "노동의 휴식"의 동기와 두 번째, "사회적 동기"를 가집니다. 신명기 512-15절에 기록된 안식일 계명은 사회적 동기를 출애굽 사건에 근거시킨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해방시켰으므로 이스라엘도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안식일에는 쉬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 계명의 사회적 동기는 출애굽기 208-11절에도 나타납니다. 여기서 사회적 동기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근거를 둡니다.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일하시고 칠일 째에 쉬셨으므로 너희는 남종과 여종,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시키지 말고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노동으로 지친 사람들, 종이나 하인들을 안식일에 쉬게 하는 것은 여기서 "창조질서"에 속합니다. 이 창조질서는 출애굽의 동기를 통하여 강화됩니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였으니 너희도 그 하나님의 자비를 따라 너희의 남종과 여종,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은 물론 모든 가축도 쉬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단지 종교적 계명이 아니라 "사회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발견합니다.

 

안식일의 생태학적 의미

안식일의 휴식은 인간과 동물은 물론 자연에 이르기까지 해당합니다. 고대사회에 있어서 노동은 직접적이며 육체적인 자연의 가공을 뜻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을 직접 가공함으로써, 예를 들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나무를 채취함으로써 양식과 땔감과 집과 옷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쉰다는 것은 논과 밭과 나무들과 동물들도 휴식하고 자신의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Let it be)을 뜻합니다. 따라서 안식일의 휴식은 인간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인간에 의하여 가공되는 자연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노동으로 지친 인간을 회복시키는 "치료적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인간에 의하여 가공된 자연을 회복시키는 "생태학적 의미"를 가집니다. 안식일에 자연은 인간을 위한 가공된 자연을 회복시키는 "생태학적 의미"를 가집니다. 안식일에 자연은 인간을 위한 재료나 노동의 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로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와 함께 인간은 휴식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인간을 위한 이용가치에 따라서 관찰되던 모든 사물들이 그들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을 명령합니다. 그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흔히 우리나라의 교회는 안식일에 노동하지 않고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안식일에 일하지 않고 쉬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길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이것을 넘어서서 사람은 물론 모든 동물과 온 자연이 하나님 앞에서 안식하며 그들의 생명을 보호받으며 평화 속에서 그들의 생명력을 회복하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이 피조물의 고난에 대한 염려와 고통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자신도 휴식하는 데에 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단지 기독교의 종교적인 의식과 형식들을 지키는 데에 있지 않고 온 피조물의 생명을 보호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평화 속에서 안식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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