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금(2)
본문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루터는 마태복음 17장 24절에서 27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베드로의 질문을 받은 예수께서 관세와 국세를 세상임금들에게 내는 것을 인정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세금을 내는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신앙의 자유'에 관한 것으로서, 이 세상에서 의롭다고 인정받기 위한 모범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웃들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명이다. 그의 관점에서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법과 권위에 복종하는 이유는 이것에 의하여 의로워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신앙으로 의로워졌기 때문이다. 세상의 권위를 따르는 것은 다른 이들을 위한 봉사의 정신에 근거하며, 헌신적인 사랑의 정신을 내포하는 것이다.
루터는 개혁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당시 왕정시대에 교황이 독일인들에게 세금을 거두었던 본래의 이유는 터키와 이교도로부터 기독교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상기시켰다. 따라서 평신도와 성직자 모두 세금을 내었는데, 그 후 수백 년이 지나도록 교황청은 세금을 본래의 목적과 상관없이 일상적으로 거두고, 교황청을 짓는 일에 낭비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칼빈은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을 합법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세금은 순전히 국가의 질서를 위한 것이며, 세금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정당한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요셉, 다윗, 히스기야, 요시아, 다니엘, 여호사밧과 같은 신앙의 인물들과 왕들이 신앙의 경건성을 통하여 공적헌금이나 기금을 자유롭게 모금한 사실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에스겔서 48장 21절에는 군주에게 많은 땅을 드리는 내용이 나오는데 칼빈은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왕국을 묘사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로마서 13장 6절의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세금을 내야 할 기독교인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동시에 관리들은 세금을 함부로 낭비하거나 탕진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은 ‘국민의 피’와 같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루터의 당시 관점을 현재의 목회자의 납세문제와 연관하여 볼 때, 만일 국가가 기독교의 활동과 신앙의 자유를 보호하여 주고, 한국 내 기독교인의 인권과 생명을 지켜준다면, 세금납부의 문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아울러 세금을 통하여 기독교문화의 유산을 보전하는 다양한 정책을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국가의 예산을 기독교가 사용할 때, 정교유착의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 국가가 교회의 성지 보전을 위하여 국가예산을 사용하고 있으며, 기독교 학교와 기독교 관련 복지관, 기독교 관련 교도소, 교회연관 유치원 등의 다양한 교육시설에 예산을 주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종교적 신념이 사회에 대한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루터의 ‘직업소명설’과 칼빈의 ‘예정론’이 자본주의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베버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온 칼빈주의에서는 개인과 윤리간의 분열은 없었다고 강조하면서, 그 이유로서 칼빈주의의 윤리적 공적주의와 직업개념이 그 특성이라고 주장하였다. 루터에게는 청교도 상인에게서 발견되는 금욕주의와 칼빈에게는 철저한 구원이라는 자기 확신을 보장하여 주는 직업노동이 자본주의의 정신이었다. 노동을 통한 부의 축적이 아니라 공적주의에 따른 사회적 책임과 헌신을 통하여 자본주의가 발전되었다고 볼 때, 여기서 세금납부는 기독교정신과 상통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종교개혁정신에 나타나는 세금의 문제는 신앙의 자유와 연관이 되어있다. 이는 성직자에게 족쇄가 아니라 자발적인 행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루터가 강조한 참된 믿음에 대하여 주목하여야 한다. 그가 강조하는 믿음이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를 향한 자신의 변화이며 사회에 대한 책임이다. 루터는 불에서 빛과 열을 분리할 수 없듯이, 바른 교회는 고백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교회 안의 것과 밖의 것으로 구분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바른 기도와 진정한 회개, 그리고 사회에 대한 책임은 기독교가 회복하여야 할 종교개혁 신앙의 본질인 믿음과 관계가 있다. 따라서 세금을 통하여 사회의 책임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세금 논쟁은 단지 세금의 법적 도덕적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목회자는 세금에 대하여 얼마나 신학적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 달려있다고 본다. 윤리와 직업에 대한 인식이 공적 영역에서 분리되지 않고 책임의 의무로 다가올 때, 목회자의 세금은 오히려 기독교의 사랑을 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목회자의 세금(소득세) 납부가 시기상조니 성직이 일반적인 직업과 달라서 낼 수 없느니라고 설레발치는 교단과 목회자는 결국, 밖으로 드러나면 안 되는 감출 것이 있거나,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전혀 반대되는 더 움켜쥐고 싶은 추악한 욕망을 숨길 수 없거나, 자신을 이세상의 체제와 삶의 테두리에서 떨어트려 놓고 보는 이단적 신비주의에 취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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