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과 기독교 경제윤리와 신앙(연재)
본문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22:1∼2)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지금 이 시대는 돈이 최고인 물질만능주의와 물신숭배의 시대라는 사실에 모두 공감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평가되고 돈만 있으면 모든 게 다 되는 세상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마저도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고, 비교하고, 질투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이 돈과 하나님 사이에서 매일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돈과 하나님을 같이 섬길 수 없다고 못 박아 말씀하셨습니다. 현대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물신숭배 풍조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독교 경제윤리를 따라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성경 말씀과 기독교 경제윤리를 실천하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물신숭배의 시대, 지금 한국교회는 기독교 경제윤리가 가장 절실히 필요합니다.
1. 물질적인 경제문제가 영적인 신앙과 무슨 상관인가?
기독교 경제윤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적인 경제문제가 영적인 기독교 신앙과 무슨 상관이냐며 반문합니다. 교회 잘 다니고, 봉사 잘하고, 성경 잘 읽고, 기도 잘하면 됐지 무슨 경제얘기냐는 반응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정작 현실적인 경제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사람이 돈을 벌거나 쓰면서 사는 한 모든 사람은 경제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또한 현실의 경제문제에 있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인 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경제이론과 경제 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만의 경제이론과 경제윤리가 성경적인지 아니면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경제윤리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교회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찾아서라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비롯해 우리보다 앞서 간 수많은 신앙의 증인들이 가르쳐 왔듯이, 기독교 신앙은 물질적인 경제문제와 영적인 신앙의 문제를 분리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분리된 이원론이 아닌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하나로 통합된 일원론에 가깝습니다. 즉 물질적인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이원론은 기독교적인 것이 아닌 고대 헬라 철학(헬레니즘)에서 온 이단적인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바로 이 영지주의 이원론과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만 했습니다. 유대 헤브라이즘과 기독교는 물질세계를 창조하신 선하신 하나님의 선한 창조를 강조합니다. 기독교는 물질세계와 육체, 노동을 천시하고 경멸하는 헬라 철학이나 영지주의 이원론의 창조 신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은 영지주의적인 이원론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인간은 영(靈)과 혼(魂)과 육체(肉體)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로 통합된 존재이듯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입니다. 육체 없이 영혼만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반대로 영혼 없이 육체만 있는 인간도 없습니다. 인간은 물질적인 육체와 영적이고 정신적인 영혼이 통합된 존재입니다.
온전한 사람이시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선한 물질세계를 창조하셨고 성자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한 성부 하나님이 노동하시니 성자 예수님도 노동하십니다. 기독교는 물질세계와 육체, 노동을 천시하고 경멸하는 영지주의 이원론과 정반대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물질세계 창조와 성자 예수님의 성육신, 두 분의 노동에는 이원론과 영지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2. 그러면 기독교 경제윤리란 무엇인가?
기독교 경제윤리는 기독교, 경제, 윤리라는 세 단어가 결합된 말입니다. 경제(economy)라는 말은 청지기(집안 살림하는 사람, 집사)를 뜻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모스(oikonomos)에서 유래했습니다. 원래 경제라는 말은 청지기를 뜻합니다. 집안 살림을 맡아서 살림살이하는 것과 세상의 여러 경제는 모양과 크기만 다를 뿐 사실상 본질은 같습니다. 기독교적인 경제는 소유(ownership)가 아닌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맡아서 살림살이하는 청지기(stewardship)적 소명을 뜻합니다.
존 러스킨(John Ruskin)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열린책들)>에서 경제를 "생명을 낳고 기르고 보존하는 모든 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경제윤리라는 말에서 윤리는 무슨 뜻일까요? 국어사전은 윤리를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도리나 규범을 뜻함"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윤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기독교적인 도리나 규범을 뜻합니다. 기독교, 경제, 윤리라는 말의 뜻을 종합해 보면 기독교 경제윤리란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여러 경제활동에 대해 하나님의 (성경)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기독교적인 도리나 규범"을 뜻합니다.
우리의 물질적인 경제생활은 하나님과 이웃에게 영향을 미치는 영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정의하신 기독교 신앙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 것처럼, 하나님과 이웃에 관계된 경제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핵심을 차지하는 중요한 경제문제에 대해 지금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자신을 먼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나라와 모든 국민이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변함없는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오히려 반대로 행한다면 이 세상은 점점 더 고통과 죄악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신앙의 핵심을 차지하는 경제문제에 대해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기독교 경제윤리를 배우고 실천하여 이 세상을 하나님나라에 가깝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생각하고 이야기해 보기
1) 경제문제와 신앙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2) 기독교 경제윤리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3) 마태복음 6장 24절과 25절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세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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