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과 불로소득(不勞所得)

작성자 외마
작성일 17-09-02 07:29 | 조회 3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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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데살로니가 후서 3:10)

 

불로소득이란 글자 그대로 땀도 흘리지 않고, 하등의 위험도 부담하지 않고 거저 챙기는 소득을 말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경제재는 토지, 노동, 자본 같은 생산요소를 투입하는 생산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재화를 차지하면, 다른 누군가는 적어도 그 이상을 잃어버려야 합니다. 불로소득(unearned income)이 문제가 되는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을 그냥 줍는 것이 아니고 긍극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과거 어떤 실세는 개발계획이 확정되기도 전에 미리 정보를 빼돌려 (당시로서는 특혜인) 융자까지 받아 넓은 땅을 헐값에 사서 수십 배의 차익을 남겼습니다. 멋모르고 땅을 판 원주민은 울화병을 이기지 못하고 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이 차지한 불로소득은 원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여 수많은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시킨 결과를 낳았습니다.

 

남모르는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남다르게 초과이익을 차지하고, 이리저리 줄을 대야 자리를 앉을 수 있는 풍토에서는 불로소득이 생성되기 쉽습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본원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노력보다 쉽게 돈을 버는 연금술에 열중하게 만듭니다. 물밑경쟁을 통하여 특별한 금융, 조세, ·허가 등을 따내는 이권경쟁과 내부거래를 이용하여 특혜를 받고 일확천금을 거머쥐려고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남이야 어떻게 되던 나만 배부르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가 극성을 부려 기업가 정신, 장인정신(artisan spirit)이 위축되고 인적자원을 소홀히 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맙니다. 예컨대 기술혁신에 힘쓰지 않고 협상능력(bargaining power) 확장에만 힘을 기울이는 기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은 노동집약에서 자본축적으로 다시 기술·정보 융합 산업으로 부가가치 창출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데, 인적자원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빤한 일입니다.

어떤 사회에서도 불로소득을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겠지만 그 발생소지를 극소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불로소득을 예방하려면 먼저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정보가 독점되고 남용되는 것을 막으면 남다른 초과이익이 발생할 소지가 줄어들 것입니다. 투명성은 어떤 일의 결과는 물론 과정의 모든 것을 누구에게나 남김없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보의 공유는 내부자거래, 부패, 거품으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제거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후진국 증상의 하나는 규제는 이리저리 장치되어 있지만 이를 빠져나가는 방법 또한 있다는 점입니다. 그물을 아무리 촘촘하게 엮어도 구멍이 여기 저기 뚫려 있으면 눈먼 고기만 잡히는 법입니다.

 

거품, 부패, 담합, 내부자거래로 발생하기 쉬운 불로소득이 커질수록 보통사람들의 행복의 원천이 되는 땀의 가치, 삶의 보람은 멀어져 갑니다. 우리나라가 괄목할 경제성장을 이룩하고도 행복지수가 세계 최하위 수준에 있고 자살률이 그리 높은 것은 아마도 불로소득이 그치지 않고 있다는 하나의 반증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본원적 부가가치 창출보다는 이권경쟁에서 경제적 승패가 좌우되는 사회에서 갈등과 대립이 조장되기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대가로 하여 얻게 되는 불로소득이 창궐하게 되면 공동체의식이 파괴되고 맙니다. 불로소득이 만연한 사회에서 경쟁에서 탈락하면 자신의 판단 착오나 게으름보다 사회의 부조리를 탓하기 쉬워집니다. 그래서 불로소득 차단은 아마도 망국적 지역감정 그리고 소위 보수와 진보의 불필요한 대립까지도 누그러트릴 수 있는 묘약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로소득은 화국병민(禍國病民) 즉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신음하게 하는 근본원인이 됩니다. 특권층이 아닌 일반시민, 선량한 시민들이 살기 좋은 나라는 불로소득이 없는 나라, 부끄럽게 생각하는 국민정신이 있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례 15) 공무원 연금공단 '성과급 잔치'도덕적 해이 심각

2015515일 공무원 연금공단에 대한 국감에서 서울시 산하 17개 공공기관이 22조원을 웃도는 빚을 쌓아놓고도 2012년부터 3년간 임직원에게 3570억원을 성과급으로 준 것으로 나타났다. 1명당 평균 1190만원꼴이다. 특히 서울도시철도공사, 서울메트로, SH공사는 지난해 각각 2658억원, 1587억원, 1044억원의 적자를 냈는데도 성과급을 계속 줬다고 한다. 3년간 지급한 성과급은 1인당 평균 서울도시철도공사 1522만원, 서울메트로 2031만원, SH공사는 945만원에 달했다.

 

빚더미와 적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성과급 잔치를 또 확인하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수술해 국가경쟁력의 토대로 삼겠다는 공공 개혁은 바라기 힘들다.

 

이들 기관의 평가 실적을 보면 성과급제도가 과연 정상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서울메트로는 2013년 기관평가에서 등급을 받았다. 전년의 적자는 1728억원, 부채는 33035억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기관장은 260%, 직원은 140%의 성과급을 받았다. 서울도시철도는 지난해 꼴찌 등급인 를 받았다. 그런데도 기관장과 임직원은 모두 100% 이상의 성과급을 챙겼다. 빚과 적자가 늘어나도 보너스를 주니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살을 도려내는 구조조정에 나설 턱이 없다. 고작 한다는 짓이 요금을 올려 적자를 메우겠다는 궁리나 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6월부터 지하철 요금을 200, 19.04% 올리기로 했다. 이런 식의 요금 인상에 시민이 흔쾌히 동의할지 의문이다.

 

도덕적 해이는 서울시 산하 기관에만 번진 것이 아니다. 중앙, 다른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도 대동소이하다. 국토교통부 산하 22개 공공기관의 경우 20135789억원을 성과급으로 뿌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하루 123억원의 이자를 물면서도 임직원 1인당 성과급을 100만원씩 올려 398억원을 지급했다. 8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되는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 사업을 한 한국광물자원공사의 경우 2010년부터 2년간 기관장과 임원의 연봉을 40% 가까이 올렸다고 한다.

 

이런 파행은 구조 개혁과는 거리가 먼 엉터리 성과급제도와 소홀한 감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뿌리 뽑자면 성과급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빚과 적자를 늘리면 성과급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공공 개혁의 첫걸음이다.

[출처] 세계일보 201556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5/06/20150506004545.html

 

성경은 일하기를 싫어하여 불로소득으로 살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안식일에는 노동을 멈추고 쉬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는 말씀은 노동하지 않고 사는 것을 금합니다. 즉 땀 흘려 노동하여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노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노동한 것으로만 살아가려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자신은 노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노동하여 만든 결과를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취하려는 부동산 투기나 여러 불로소득으로 얻으려는 마음은 성경이 금하는 잘못입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살후 3:10)"고 말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노동하지 않고 부동산 투기나 여러 불로소득을 통해 다른 사람이 만든 노동의 열매를 취하여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일하기를 싫어하여 다른 사람의 노동의 열매로만 살아가려는 잘못된 사람입니다. 불로소득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은 노동하여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창조 명령과 문화 명령을 어기는 것입니다.

 

희년, 자기 노동의 열매를 누림과 노동 착취 금지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정상적인 노동은 자기 땅에서 땀 흘려 일하여 자기 노동의 열매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토지권은 노동권과 연결됩니다. 일할 수 있는 자기 땅이 없으면 노동할 수 있는 권리가 침해됩니다. 토지권이 없으면 노동권도 침해되는 것입니다. 희년 말씀에서는 가난해져서 희년까지 땅을 판 형제를 보살피고(25:25) 품꾼(임금 노동자)으로 일을 시키면서 일한 대가를 주도록 말씀합니다(25:39, 40).

성경에서는 품꾼을 잘 대우하고 일한 그날의 품삯을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24:14~15).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인은 예배와 공공의 업무를 하고 십일조를 받아서 살도록 말씀합니다(18:21). 또 땅이 없는 나그네와 이방인들에게도 일거리를 주고 그들을 압제하거나 노동 착취를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생각하고 이야기해 보기

 

1) 불로소득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어떤 명령을 어긴 것입니까?

 

3) 데살로니가후서 310절에서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지 설명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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