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딜레마

작성자 외마
작성일 17-08-19 17:39 | 조회 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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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인 내쉬가 창안해낸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이렇게 시작한다.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도록 독립된 밀폐공간에 갇힌 두 죄수(A와 B라 하자) 에게 각자 두 가지 선택이 주어진다. 상대방의 비리를 폭로하는 전략과 폭로하지 않는 전략의 두 가지이다.
(이를 묵비와 자기잘못의 자백으로도 구성 가능하지만 여기서는 강경책을 통해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느냐 아니면 온건하게 가느냐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침묵과 상대방 비리 폭로로 게임을 구성한다)
 
A와 B 각각에 대해 폭로와 침묵의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므로 나올 수 있는 결과는 총 네 가지이다. 흥미 있는 것은 선택의 결과 나타나는 구조이다. 우선 둘 다 침묵을 선택하면 둘 다 1년씩 형을 받게 된다. 만일 둘 다 서로의 비리를 폭로하면 각각 5년씩 형을 받게 된다. 따라서 명백한 것은 둘 다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 둘 다 폭로를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게임의 백미는 한쪽은 침묵을 선택하는데 다른 쪽은 폭로를 선택하는 경우이다. 만일 A는 침묵하는데 B는 A의 비리를 폭로하는 경우 모든 죄를 A가 뒤집어쓰면서 10년형을 받게 되고 B는 석방이 된다. 반대로 A가 B의 죄를 폭로하고 B가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 A가 석방이 되고 B는 10년형을 받게 된다.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 자신은 침묵하는데 상대방이 폭로를 할 경우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쓰게 되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결국 둘은 어떤 선택을 할까? 답은 이렇다.

 

우선 A는 생각한다.
" ① B가 침묵해준다면 나는 B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B가 죄를 다 뒤집어쓰고 나는 석방될 것이기 때문이다.

② 만일 B가 내 비리를 폭로한다면 내가 침묵할 경우 내가 다 뒤집어쓴다.
따라서 나는 폭로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결국 B가 침묵하거나 폭로하거나 나는 폭로를 하는 것이 낫다."
B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논리를 A와 B를 바꾸어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
결국 B도 폭로를 선택한다. 그리하여 A와 B로 구성된 사회에서 사회적으로는 최악의 선택이 이루어진다. 서로 상대방 비리를 폭로하고 5년씩 형을 살게 된다. 서로 침묵하면 1년으로 끝나는데도 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개인들이 각자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할 경우 사회적으로 최적의 결과가 도출된다는 믿음에 기초해 있다.


"네가 아침에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제빵업자와 낙농업자가 이타적이 아니라 이기적이기 때문"이라는 말에 이러한 부분이 잘 요약되어 있다.


결국 죄수의 역설 게임이 던진 화두는 각자 최선을 다할 때 사회적으로 최악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있는 이론적인 메커니즘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게임이론이라는 분야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 게임의 특성은 일회성이라는 점과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점이다. 만일 되풀이되는 게임이면 학습효과에 의해 둘 다 침묵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서로 의사소통이 잘되는 경우에도 침묵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를 북한과 미국에 적용하면 어떨까. 북한은 핵개발지속과 폐기중 하나를 선택하고 미국은 무력제재와 대북유화책 중 하나를 선택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이 게임이 한번만 이루어진다고 다소 비현실적인 가정을 해보자. 북한은 핵 폐기, 미국은 대북유화책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상태이고 북한은 핵개발 지속, 미국은 무력제재를 선택하는 것은 최악의 결과이다. 그러나 만일 미국은 유화책을 선택하는데 북한은 핵개발 지속을 선택하면 미국이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면서 수많은 비판을 받게 되고 거꾸로 북한은 핵 폐기를 선택하는데 미국은 무력제재를 선택한다면 북한체제에 위협이 오면서 북한이 최악의 상태가 된다고 하자. 결국 죄수의 역설게임이 주는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양측은 자신이 온건책을 선택할 때 상대방은 강경책을 선택할 경우 자신에게 엄청난 피해가 오는 데에 따른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강경책을 선택한다.


결국 미국은 무력제재라는 강경책을, 북한은 핵개발 지속이라는 강경책을 선택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최악의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가상적인 상황이다. 실제상황에서는 미국과 북한은 계속 대화를 하고 있다. 또한 이런 게임이 처음이 아니고 반복적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이 없는 일회성게임이라는 죄수의 역설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최악을 선택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이 이론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게임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은 상당하다. 협상보다는 파업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등 많은 경우에 둘 다 모두 왜 강경책을 선택함으로써 최악의 상태로 가는지 이 이론은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정부의 역할은 무리한 강경책은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이러한 사실을 경제주체들에게 계속 학습시킴으로써 사회 전체적으로 온건책이 대접받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온건과 협상이 대접받고 강경과 외골수는 추방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한다는 믿음을 모든 경제주체가 공유할 때 문제와 갈등해결이 빨라지고 보다 나은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는 점을 '죄수의 역설'(逆說)은 '역설'(力說)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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