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경제의 황금율

작성자 외마
작성일 17-08-19 11:29 | 조회 449 | 댓글 0

본문

 1. 성경의 말씀

 

 (1)황금율(黃金律, Golden rule)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6:31)

 

 (2) 경제순환의 영리(靈理)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
 
 2. 황금율(黃金律, Golden rule)의 개념(Conception)
 
 황금율이란 "자신이 대접 받고 싶어 하는 만큼 남을 대우하라"는 예수의 계명에 대한 17세기(1674) 이후의 현대적 명칭이다. 이 이름은 황금(黃金)이 다른 모든 금속보다 우월한 것처럼 이 행동규범이 다른 모든 규범보다 우월하다는 의미이다. 이 규범은 이웃에 대한 그리스도인(Christian)의 의무의 요약이고 기본적 윤리원칙(A fundamental ethical principle)이다.(주1)
 이 황금율은 기독교인만의 삶에 대한 적절한 지침으로서 여겨질 수 없으며 그 진리가 모든 인간들의 모든 상황 안에서 창조적으로 다양하게 적용될 때 모든 사람들은 상호간에 무한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황금율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적용해야 할 이념적 도덕적 규범이다.
따라서 황금율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많은 민족들의 도덕적, 종교적인 교훈들에 널리 퍼져 있다. 공자를 비롯한 초대 그리스(Greece)인들과 로마(Rome)인들의 문헌과 힌두교. 불교. 이스람교의 교리가운데서도 나타나 있다.(주2)
 
 주1 : The new Encyclopaedia Britanica in 30 Volumes, Micropaedia Vo1. IV Redy Reference and Index, Encyclopaedia Britanica, Inco, Helen Hemingway Benton, publisher, 1973-1974, Seoul, p.608.
  주2 : James Hastings(editor), Encyclopaesia of Religion and ethics Vo1. V1, Edinburch T.& T. Clark, 1981, p311.
 
 3. "주라"는 황금율의 경제영리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눅6:31)는 보편적인 규범인 황금율(Golden rule)은 눅6:38에서 더 구체적인 "주라"는 영적 경제원리(God's plan of economy)로 계시되고 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주라"는 말씀으로 시작된 눅6:38의 말씀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주라"는 명령(a command)이고, 둘은, "그러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And it shall be given unto you)라는 약속(a promise)이고, 셋은,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는 원리이다.
 이 세 구성부분 중 "주라"는 명령의 말씀이 전문의 중심[기축(機軸), hinge]이 되고 있다.
 나머지 둘째, 셋째 부분은 단순히 주는행동과 결과일 뿐이다. 참으로 기독교에서 "주라"는 말씀은 한마디의 말씀 안에 있는 신앙부흥(revival in a word)의 진리이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는 최선의 첩경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는 개인적인 말씀(a personal word)이고,
 둘째는 실제적인 말씀(a practical word)이고,
 셋째는 가능한 말씀(a possible word)이고,
 넷째는 유익한 말씀(a profitable word)이다.
 
 (1) 개인적인 말씀(a personal word)
 
 (가) 포함(inclusive)의 의미
 "주라"는 말씀은 개인적으로 포함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어에서는 이 명령은 복수이다. 따라서 이것은 모든 사람(주는 행위의 주체)에 관한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주는 행위의 객체)을 포함한다.  그리고 받을 사람(주는 행위의 상대방)도 모든 사람이다.  본문의 "주라"는 말씀엔 구체적인 제한의 명세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포함되는 보편성을 갖는다.
 
 (나) 명령(imperative)의 의미
 "주라"는 말씀은 개인적으로 명령적이다. 본문에서의 "주라"는 어법은 필요(necessity, demand)를 말하는 명령법이다. 명령법에서는 선택이 없다.  어떤 말들은 사실을 선언하는데 그치지만 명령은 명백한 필요를 의미하며, 반드시 반응을 요구한다.
 
 (다) 계속(continuous)의 의미
 "주라"는 말씀은 개인적으로 계속적이다. 그리스어(성경원문)에서는 계속적 의미를 갖는 현재시제이다. 이것은 영어로 표현하면, "너희 모두는 항상 주는 일을 계속하여야 한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은, "주는 것을 너희들의 영속적인 생활 형태로 삼으라"는 것이다.
 
 (라) 무조건(unconditional)의 의미
 "주라"는 예수님의 명령엔, 그 앞뒤에 "만약"이라는 것이 없다. 이것은 이 명령(Give)에는 조건이 전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누구도 "나는 줄 것이 없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다음 (2)번 참고]
예컨대 "주라"는 명령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계속적으로 조건없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2) 실제적인 말씀(a practical word)
 
 "주라"는 짧은 한 단어(말씀)안에 우주의 비밀의 열쇠가 있다. 즉 우주의 문맥에 쓰여진 이 법칙은 그것이 준수될 때에는 온 우주 시스템의 부(wealth)를 방출(release)시키지만  그 법칙이 파괴되거나, 무시될 때에는 온 실재의 시스템이 우리에게 문을 잠궈 버린다.
 
 (가) 그것(주는 것)은 자연계에서도 실제적이다. 왜냐하면 자연계는 상호분여(相互分與, 서로 나눔, mutual sharing within the context of nature)하는 제생(濟生)시스템(the benevolent system of nature)으로 창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온 자연생태계는 서로 주고받는 (Give and take) 순환체계이다.(주3:자연의 황금율)
예컨대 방대한 에너지의 공급원인 태양은 땅에 햇빛을 주고 땅은 식물을 키워주고 식물은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또 식물과 동물은 인간에게 생존수단(생존조건)을 마련해 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 동시에 인간도 자멸할 것이다.)
 
 (나) 주는 것(to give)은 자연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필요의 영역에서도 실제적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주라"는 명령은 자연계를 초월하는 온 실재의 시스템을 가동하여 하늘의 부(富)를 이 세상의 경제에로 실제화 시키는 비밀(열쇠)을 주시는 것이다. 또 예수님은 우리가 줄 것과 우리가 준 것보다 더 많이 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후한 분량"(good measure; good, precious, or honorable quantity),
 둘째, "눌러서"(pressed down; perfectly and permanently satisfied),
 셋째, "흔들어서"(shaken together;  to settle),
 넷째, "넘치도록"(running over; continuously pouring out) 다시 돌려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님께서 주는 자는 반드시 받을 것이라는 실제적인 약속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단순한 비유나 희망이나 훈계가 아니라 실제적인 내용이다.
 
 (다) "주라"라는 명령(말씀)을 시작할 곳은 어디인가?
 그 답은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필요(need)가 되고 있다. 만일 우리의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필요, Need)가 시간의 부족이라면 이때엔 역설 같지만 우리의 가장 부족한 시간을  "주라"(Give away)는 것이다. 주는 방법은
 첫째, 의도적으로 아침에 우선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라. 그러자면 더 일찍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대를 보시고 그것을 감당할 힘을 충분히 주실 것이다.
 둘째, 바쁜 날 중에서도 "필요"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대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일용품(commodity)인 그대의 "시간"(time)의 일부를 그들에게 주라.
 만일 예수님의 약속(눅6:38)이 유효하다면 그대는 더 많은 시간을 갖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은, 그대의 중요한 일들과 필요한 힘을 위하여 마치 그대의 시간(날들)을 실제로 더한 것처럼 만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실제로 물리적 시간이 더 늘었다는 뜻이 아니다.)
 참으로 주는 것은 해야 할 실제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가장 큰 필요의 점에서 시작하라.
 
 (3) 가능한 말씀(a possible word)
 
 "주라"는 말씀은 개인적으로 가능한 말씀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순종할 수 없는(인간의 능력을 넘는) 명령은 결코 주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명령은 동시에 언약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명령하셨다면 하나님은 항상 그가 명령하신 것을 할 수 있게 하신다.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밖에 서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셨다.(요11:43) 이때 나사로가 "주여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나흘이나 죽은 상태에 있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걸어 나왔다. 그 수족은 동인 채로, 그리고 얼굴은 수건에 싸인 채로 무덤 입구까지 나왔다. 비록 시체일지라도 예수께서 명하셨던 대로 걸어 나왔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어떤 날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때, 한편 손 마른 사람이 들어왔다.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너의 손을 내밀라."고하셨다.(마12:13, 막3:5, 눅6:10) 이때 그 사람은 "나는 나의 손을 내밀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이 다른 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였다.(마12:13)  이때도 예수께서 명하셨던 것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명령으로서 말씀하신 것은 불가능이란 없다.
 예루살렘에 있는 베데스다라는  연못가에 38년간이나 누워 있던 병자가 있었다.(요5:2-9) 어느날 예수께서 오셔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셨다.  이때도 그 사람은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천 번이나 노력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걷게 하셨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Dynamic)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하였다.
예수님의 명령은 약속이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신 적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어떤 명령에도 절대로 충격을 받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 명령을 하신다는 사실은 그 안에서 우리가 그것을 성취시킬 능력을 우리 안에 갖는다는 약속의 성명이다.
 
 (4) 유익한 말씀(a profitable word)
 
 "주라"는 말씀은 개인적으로 유익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방법이므로 인간지성은 전혀 감지(感知)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하나님의 길)에 따라 주는 것은 유익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님에 의한 하나님 자신의 약속이고, 하나님의 영리(靈理)이기 때문이다.
 
 (가) 예수님에 의한 하나님의 약속(the promise)
 "주라 그러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눅6:38)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만드신 진실한 약속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요5:30) "나는 내가 듣는 대로 심판한다. 그러므로 나의 심판은 의로우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신대로 아버지의 그 말씀을 되풀이할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자원이 이 약속(눅6:38)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면 그 약속을 만드시지 않으셨을 것이다.(즉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원의 후원을 확실히 아셨다는 뜻)
 
 (나) 하나님의 영리(the principle of God's way)
 모든 사람은 이 영리의 진리에 대한 산 증거이다. "그대의 얻을 분량은 그대가 준 것에 비례하여 받을 것이다."
 이것은 불변의 영적원리(the principle)이다. 이것은 자연 안에 쓰여진 만유인력(중력)의 법칙만큼 확실한 법칙이다. 누구도 이 법칙들("준대로 받는다"는 영리와 인력의 법칙)을 깨뜨릴 수 없다.
 우주의 하나님이 이것을 약속하시고 있다. 위의 영리(The principle, 준대로 받는다는 영리)를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뒷받침하고 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라고 말이다.
 바울 사도가 기록한 이 말씀(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고후9:6)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준대로 받는다는 것)(눅6:38)은 모두 황금율(대접한 대로 대접받는다는 진리)(마7:12, 눅6:31)을 바탕(platform)으로 하는 영적원리이다. 이것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사(示唆)가 아니다.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다. 즉 적게 심으면(주면) 항상 적게 거두고(받고), 많이 심는 자(주는 자)는 항상 많이 거둔다(받는다). 그대가 얼마를 거두는(받는)가는 그대에게 달려있다.
 엘리사의 사역을 도왔던 과부는 받을 준비에 대한 그녀의 순종의 정도에 의하여 그녀의 받을 분량이 제한되었다. 진실로 주는 것은 유익한 모험(투자)이다. 
 4. 맺음말
 
 끝으로 누가복음 6:38절에 관한 몇 가지 기본적인 결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주는 것과 받는 것
 
  우리는 주는 것으로부터 받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2) 무조건의 명령
 
 본문(눅6:38)에서는 어떤 조건이나 자격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제한이 없다는 것을 믿게 한다. 이것은 우리의 하나님은 무한한 자원을 갖고 계시는 분이시고, 또 우리에게 엄청난 선물로 "주는 특권"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 특권을 행사하므로서 우리는 온 우주의 보물창고를 열 수 있고 하늘나라를 이 땅으로 내려오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인간사(人間事)속으로 모실 수 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제플랜을 땅의 영역으로 끌어 들일 수 있고 엄청난(수백, 수천배)삶의 차이(효과)를 만들 수 있다.(주4)
 
 주4 :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55세때에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음식은 과자와 우유로 연명하고 있었고, 그의 엄청난 부(재산)의 결과를 향수할 수 없었다. 그는 그의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5년이나 그는 단 한 시간의 단잠도 자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배가 고팠지만 먹을 수 없었다. 아무도 의지할 것이 없는 채 서서히 죽음을 맞고 있는 불상한 신세였다. 그는 혈액병으로 쇠약해졌고 위궤양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때 그는 그가 죽음을 맞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껏(여태까지)하지 못했던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즐겨야 하겠다고 상상했다. 그래서 그가 했던 일들 중에는 그의 기적적인 치유에 큰 도움을 준 한 활동이 있었다. 그 일로 그 후 그는 35년 이상의 세월을 살았다. 그 한 활동이 무엇이었던가?(대답은 이렇다)  "록펠러가 주는 것을 배웠다."(He learned to give!)  그가 신나게 주는(Giving) 활동(모험)을 시작한 후 12개월 안에 실제적으로 건강해졌고 그후 그의 여생을 건강하게 보냈다.
 
 (3) 주어야 하는 출발점
 
 눅6:38절에 "주라"는 명령은 이 글의 논의의 출발점이고, 가장 명백하고, 단순한 결론이기도 하다. 그러면 주어야 할 출발점은 어디인가? 그답은 다음과 같다.  "그대가 가장 적게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용품(재물, 돈, 시간, 정력, 사랑등등)을 , 그대 자신이 가장 그것의 필요를 절감하는 곳에서 주라."
 예를 들면 , 그대가 사랑이 부족하다면 더 많은 사랑을 남에게 주도록 하라, 그러면 그대에게 풍성한 사랑이 주어질 것이다. 
 그대가 시간이 부족하다면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주도록 하라, 그러면 그대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하나님의 선물로 그대에게 방출될 것이다.(주어질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대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면, 그대가 먼저 관심을 주라. 그들이 그대에게 할 수 있는 것을 예상하지 말고(어떤 보답을 기대하지 말고) 아낌없이 관심을 주라.
그 결과는 보장된다. 예수께서 그대가 받을 것을 약속하고 계시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경고의 끝말이 있다. 그것은 비록 우리가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을 알면서 남에게 줄 수 있을 지라도 절대로 그 받는 것이 우리의 주는 것(Giving)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우리는 더 주기 위하여 주어야 한다. 즉 우리는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줄 것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환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주고 → 받고 → 주고 → 받고 → 주기를 계속해야 한다.(주5)
 이것이 황금율의 경제 순환이다.
 
 (그림1) 기독교 경제의 황금율(The Golden rule of God's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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