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경제(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경제 발전시킨다)

작성자 외마
작성일 17-08-18 17:26 | 조회 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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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부터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문화(文化)가 경제발전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종교(宗敎)와 신앙(信仰)은 문화의 주춧돌 중 하나이며, 또한 점점 더 중시되고 있다. 현대 서양 사회학의 기초를 세운 막스베버(Max Weber)는 한 세기 전에 성실(誠實), 근검(勤儉), 다른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는 것 등과 같은 프로테스탄트(개혁교도)의 성품을 관찰하여, 이것이 바로 북유럽과 미국이 부강하게 된 기본요소라고 하였다. 뉴욕 대학의 역사학자인 니알 퍼거슨(Niall Ferguson)은 현재 독일과 다른 유럽 국가들의 경제가 정체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은 이들 국가들에서 국민들의 종교와 신앙이 점점 더 희박해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은 20047'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를 쓴 케빈 클라센 연구원과 프랑크 시미트 연구원은 생산성과 투자 같은 전통적인 경제 성장 요인 외에 비전통적인 경제 성장 요인이 있는지를 분석한 결과 종교와 경제의 상관관계가 높다고 밝혔다. 지옥이 있다고 믿는 국민이 많은 나라('지옥믿음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국민 소득이 높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각 나라의 '지옥믿음 비율'1인당 국민소득(2001년 기준)을 보면 미국이 '71%-34320달러'인 데 반해 아일랜드는 '53%-32410달러',일본은 '32%-25130달러',영국은 '28%-24160달러',불가리아는 '10%-6890달러''지옥믿음 비율'과 소득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세계적 석학인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도 2003년 비슷한 주장을 폈다. 전 세계 59개 국가 국민들의 종교 집회 출석률과 천국, 지옥, 신의 존재 여부 등에 대한 설문 내용을 토대로 종교와 경제 성장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신앙심이 강한 국민이 많은 국가일수록 경제성장률이 높았다는 것. 다만 종교 집회 참석률이 높을수록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종교 집회 참석률이 높아질수록 경제 발전에 쓰일 수 있는 재원이 교단으로 흘러들어가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란 것이 배로 교수의 설명이다.

 

사실 종교와 경제 발전은 자본주의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세 시대만 해도 부()의 축적은 죄악시됐다. 부의 축적은 다른 사람들의 부를 빼앗은 결과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개혁 과정에서 등장한 청교도 등 '프로테스탄트'들의 입장은 달랐다. 이들은 정당한 부의 축적을 '신의 축복'으로 합리화 했다. 당시 이 같은 논리는 봉건 지주세력과 싸우며 사회 지배세력으로 떠오르던 부르주아지(자본가)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여기서 영감을 받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라는 책을 통해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 탄생의 토대가 됐다는 견해를 밝혔다.

 

보다 경제학적인 관점으로 종교와 경제 발전의 상관관계를 분석할 수 있는 이론틀도 있다. 바로 '레몬시장 이론'이다. 레몬은 고장이 잦고 허접한 중고 자동차를 뜻하는 영어 속어다. 레몬은 향이 좋고 색깔도 맛있어 보이지만 먹기엔 너무 시다는 점에서 겉만 그럴 듯한 중고차를 레몬에 빗댄 것.

 

잠시 중고차 시장을 생각해 보자.이 시장의 특징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중고차를 파는 사람은 자신의 차에 대한 정보를 다 갖고 있다. 몇 번 사고를 냈는지, 어떻게 관리했는지, 특별한 하자는 없는지.반면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은 이런 정보를 하나도 모른다. 아는 것이 없으니 단지 값을 깎는 것으로 혹시 모를 손실을 벌충하려 한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론은 중고차 시장에서는 항상 품질 나쁜 차만이 거래된다는 것이다. 품질 좋은 중고차를 가진 사람들은 낮은 가격에 팔려 하지 않고 수요자들은 품질을 믿지 못해 가격을 깎으려고만 하다 보니 중고차 시장엔 질 나쁜 중고차만 넘쳐나게 된다는 것이다. 조지 애컬로프 미국 버클리대 교수는 이런 설명으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좋은 것은 다 빠져 나가고 나쁜 것만 남는 것을 경제학에선 '()선택'이라고 부른다. 다수의 사람들이 최선이 아닌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역선택이 나타나는 이유는 중고차 시장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그리고 정보의 비대칭성은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측면이 많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자리 잡고 사회의 투명성이 높아진다면 역선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종교의 역할이 주목받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덜 타락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덜 속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역선택은 줄게 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이득을 보게 된다.

 

결국 경제 발전의 관건은 종교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신뢰의 문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가 자신의 저서 '트러스트'에서 "국가 경쟁력의 원천은 신뢰"라며 "각 사회가 지니고 있는 신뢰의 정도가 그 사회의 경제적 특징을 결정짓고 경제 발전의 관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분명 옳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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