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원리(經濟原理)에 대한 기독교 철학적 논의(3)

작성자 외마
작성일 17-09-02 17:24 | 조회 39 | 댓글 0

본문

3. 재화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1) 정의(justice)

 

성경은 하나님이 정의(공의)로운 분이라고 선포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정의(chedekh)로 세계를 다스리시며 공정하게 만백성을 판결하시는 분이며(9:8) 정의로운 분으로 찬양받는 분이다 (24:16). 하나님은 정의로운 사람을 도우시고(50:7) 악인을 심판하시고 징벌하시며(1:5) 억울하게 압제당한 사람들의 억울한 사람들을 풀어주고 의지할 데 없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는(146:7-9) 분이다. 따라서 재판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정의로운 사람에게 무죄를 선언해야한다 (25:1). 그래서 정의의 예언자라고 불리는 아모스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너희가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아라. 너희 말대로 주 만군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다. 행여 주 만군의 하나님이 남아 있는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실지 모르니,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여라. 법정에서 올바르게 재판하여라. . .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스 5: 14-15, 24)

 

신약에서 하나님의 정의(dikaiosyne)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크리스천에게 의롭게 하여 주심”(고전 1:30)이 되시고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크리스천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고후 5:21)가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주는 구원은 크리스천을 정의롭게 살도록 만드는 동시에 끊임없이 그렇게 살도록 요구한다. 야고보서는 그리스도를 믿어서 얻은 칭의(Justification)가 결코 마음에 믿는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브라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또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고,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야고보서 2:23-24)

 

성경이 말하는 이러한 정의의 요청을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법적이고 부패한 행위, 인종과 국적, 성별과 지역, 빈부의 차이에 대한 차별(discrimination), 불공정과 불평등의 경우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아무리 경제행위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에 집중하고 그 활동의 효율성을 중시한다고 할지라도 사회적 정의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자기애와 사유재산권에 기초를 두는 자유주의 경제학에서조차 정의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세기후반에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존 롤즈이다. 롤즈는 그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 1971)에서 숙고된 합리성을 통해 정의로운 자유주의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는 자유주의 사회를 규제하는 공정성’(fairness)을 정의의 원리로 제시하면서 이 원리를 두 가지로 구체화했다. 첫 번째 원칙은 최대의 평등한 자유의 원칙이고 두 번째는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과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이익을 보장하는 차등의 원칙이다. 이 두 가지 중에서 두 번째의 원칙은 실제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모든 시민에게 가능한 한 공정한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롤즈의 말을 들어보자.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의 두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그것은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아래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지위와 직책에 결부되어야 한다. 그리고 둘째, 그것은 최소수혜자 성원들의 최대 이익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롤즈는 정의의 이념을 가지고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소유권을 제한하기 위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기회균등과 이를 실제로 실천하기 위해 소외자와 약자의 이익을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불평등한 사회현실 속에서는 최소수혜자는 항상 불리한 위치에 놓이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은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에게 특별한 보호를 요구하신 하나님의 정의의 요구와 맥이 닿아있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역사적인 배경과 현실의 조건이 서로 다른 다양한 사회에서 이러한 원칙을 적용할 수 있나이다. 이 과제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그리고 수혜를 많이 받는 계층에 속한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특별한 하나님의 요구라고 생각된다.

 

(2) 평등(equality)

 

특히 신약성경은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평등하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사도바울은 마르틴 루터에게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썼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한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 . 유대인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 3:26, 28)

 

노예를 가축과 비슷하게 생각하던 고대세계에서 기독교의 가르침은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그래서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그의경제학의 역사에서 기독교가 서양에 준 새로운 사고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기독교에 의해 영속화된 주요한 사회적 태도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하느님의 자식으로서 형제 관계이며, 따라서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르침에 따르면, ‘는 불평등한 권력, 위신, 향락의 원인이 되고 형제들 사이에 차별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기독교의 평등에 대한 믿음이 지나쳐서 중세까지도 부와 재화를 추구하는 일 자체를 죄악시하며 가난함(청빈) 자체를 도덕적이고 고귀하다는 태도가 확산되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부를 하나님의 축복의 하나로 생각하는 성경의 여러 본문(: 13:2, 왕상 3:13, 1:3-4, 3:16, 5:5)을 무시하는 태도였다. 그러나 현대의 자유주의 정치학자들조차 인정하는 것처럼 자유주의의 근본적인 결함이 가족제도를 근거로 사유재산이 존속하고 그 재산이 상속됨으로써 빈부의 격차에 의해 불평등이 확대된다는 점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한편으로 부의 엄청나게 빠른 확산이 진행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빈부의 격차와 빈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른 사회주의 계열의 철학자나 경제학자는 물론이고 자유주의 철학자의 한 사람인 롤즈 조차 자유주의의 원리로서 불평등의 극복을 위한 정의론을 들고 나왔음에 틀림없다. 그가 주장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원칙 가운데 첫 번째가 평등한 자유였다. 그는 이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각 사람은 평등한 기본 권리들과 자유들의 충분히 적절한 체계에 대한 평등한 요구권을 가지며 그러한 체계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체계와 양립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체계 내에서 평등한 정치적 자유들 그리고 오직 이러한 자유들만이 그 공정한 가치가 보장되어야 한다.”

 

롤즈는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고 현실로서 존재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자유주의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도록 보장해서 공정한 합의를 이루어야만 경제적 불평등이나 차별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한 사회의 재화를 어떻게 분배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므로 롤즈의 정의론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배정의를 어떻게 이루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3) 사랑(charity)

 

프랑스 혁명의 세 가지 구호 가운데는 형재애’(fraternite)가 있다.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생각에도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liberte)와 평등(egalite)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형제자매처럼 대하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한다. 물론 악을 용서하지 않는 거룩하고 정의로운 분이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가 비열하고 사악한 일을 저질렀을지라도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면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 .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요한14:16b, 20-21)

 

하나님이 사랑이 많은 분이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랑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더구나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모든 소유를 주고 대신 관리하도록 권한을 주신 분이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모든 시대의 크리스천은 어떤 정치?경제 체제에 살고 있든지, 동료 크리스천과 더 나아가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비크리스천을 사랑하도록 요청 받고 있다. 크리스천이 어떤 정치이념이나, 경제이론을 지지하든지 상관이 없다.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이고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중에도 동료나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골수 자유주의자나 자본주의자 중에도 주위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할 수 있다. 성육신과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보여준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적 사랑의 원리는 어떤 경제이론으로도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갖는다. 숭실대의 크리스천 경제학자 이윤재는 기독교 신앙의 이러한 측면을 은혜’(grace)사랑’(charity)의 경제라고 부른다. 이 사랑의 원리야 말로 가장 소박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경제원리 가운데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가치이며 원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사랑의 태도 위에서 우리는 경제학 이론을 연구하고 경제를 운영해 나가야 한다.

 

결국 정의와 평등의 요구는 근원적으로 이웃에 대한 배려라는 사랑의 동기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크리스천의 과제는 이러한 사랑의 자세를 어떻게 현실 경제에 반영하고 경제에 관한 이론과 실천을 만들어 가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4. 맺으며

 

지금까지 현대 사회의 경제원리에 대해 기독교철학의 관점에서 논의를 전개해 보았다. 이러한 논의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을 믿는 크리스천이 자기가 가진 재화의 이중 소유권, 즉 하나님의 원소유권과 자신의 사회적인 소유권의 관계를 성경에 근거해서 어떻게 이해’(understand)해야 하는가의 질문과 이러한 이중 소유권의 대상인 재화를 어떻게 사용’(use)해야 하는가의 질문에 대답하는 작업을 의미했다. 필자는 첫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사유재산권’(proprietary rights)책임’ (responsibility)자유’(freedom)라는 경제원리를 논의했고 둘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정의’(justice)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