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과 야만사회
본문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의 장편소설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 1954>은 핵전쟁을 이야기의 시발점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주안점은 대재앙의 양상을 그려내는 대신 문명이 산산이 무너져 내렸을 때에도 과연 인간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을 수 있는가에 맞춰져 있다.
여기서 핵전쟁은 단지 문명의 종언에 대한 상징에 다름 아니다. 더 이상 문명이 창안해낸 도덕률과 사회화된 양심에 하등 연연한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면 개인들이 굳이 그러한 제약에 계속 얽매여 있겠느냐는 작가의 물음에 누구도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핵전쟁이 임박한 가운데 25명의 소년들을 안전지대로 이동시키려던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이들은 무인도에 고립되고 만다. 처음에 소년들은 문명사회에서처럼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시늉을 내지만 이내 이탈자들이 생겨나고 나중에는 후자가 섬의 주류세력이 되어버린다. 살인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가운데 어느덧 문명사회에서 학습한 도덕률은 간곳이 없어지고 권력에 맛들인 소년들은 갈수록 포악해지면서 폭력과 공포정치를 추구한다.
이 장편소설은 무인도와 소년들이라는 단순한 배경과 인물구도를 통해 인간이 창조한 문명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권력에 대한 의지는 얼마나 태생적인 욕망인지 보여줌으로서 자칫 가식에 빠지기 쉬운 현대인의 위선을 벗겨낸다.
필자는 지난 9월 10일 주일 오전예배 때 행한 “우리가 든 돌”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부산, 강릉, 세종시 등에서 벌어진 여중생들의 ‘집단 폭력’사건을 ‘약육강식의 정글논리에 기초한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을 도무지 변화시키거나 포기할 줄 모르는 “야만성”에 있다고, 그것이 우리의 죄성이라고 말하였다.
특별히 동아시아에서의 교육열은 ‘미래시점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신분상승’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잘 교육된 ‘인성’ 보다는 잘 훈련된 공격적 ‘승부성’을 선호하는 것이다. 결국 교육을 통해 더 많은 물질적 부와 권력과 명예를 누리는 것을 가치관으로 삼는 물신(物神) 숭배사상을 가르치는 것이다.
주일을 은혜롭게 지난 월요일 아침 천안에서 또 연이어 일어난 여중생 폭력 사건을 보면서 아니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나라 전역에서 벌어졌을 폭력사건을 생각하면서, 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한다는 사람들과 정당들의 큰 목소리를 들으면서, 시대를 아파하며 회개하지 않을 뿐더러 복음을 탐욕으로 물들인 한국교회의 이기주의와 출세지향의 목회자들과 잘못된 신앙 속에서 깨우칠 줄 모르는 성도들을 보면서, 청년들이 더 이상 비전과 꿈을 갖기 어렵게 몰아세우는 이 거대한 맘몬숭배 사회를 보면서, 늘 국민들을 핑계 삼아 자신들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다른 무엇보다 나는 이 사회의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야만성’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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