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나쁜 사마리아인들
본문
1. 요약
장하준이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순희 옮김, 도서출판 부키, 2007)은,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서이다. 이 책의 제목인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그 주석1)에 의하면, 일차적으로는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이 책에서는 ‘곤경에 빠진 개발도상국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정한 선진국들’을 가리킨다.2)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을 이용하는 선진국들의 행위는 대표적으로 ‘사다리 걷어차기’이다.
“1841년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영국이 자신들은 높은 관세와 광범위한 보조금을 통해서 경제적인 패권을 장악해 놓고서 정작 다른 나라들에게는 자유 무역을 권장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영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적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고 비난하며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 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아주 흔히 쓰이는 영리한 방책”이라고 꼬집었다.”(장하준, 34).
이 사다리 걷어차기는, 역사적으로 보호무역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룬 선진국이 정작 개발도상국에게는 보호무역을 폐기하고 자유무역을 택할 것을 강요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이런 사다리 걷어차기가 최근에 극성기에 접어들었는데,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서이다. 그 결과는 개발도상국에게 냉혹했다.
“신자유주의의 자유무역, 자유 시장 정책은 성장을 위해 형평을 희생한다고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손에 넣지 못하고 있다. 시장이 자유화되고 국경이 개방되었던 지난 25년 동안 성장은 점점 둔화되어 온 것이다.”(장하준, 37).
이 책은 바로 이런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비판하면서,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미래에 대한 가상적 시나리오인데, 각각 최빈국(모잠비크)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기하고 보호 무역 정책을 택할 경우의 놀라운 발전의 시나리오와 중진국(브라질)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수할 경우의 비참한 전락의 시나리오를 보여 준다. 그 안에 담긴 9개의 장은 각각 그 부제 그대로 ‘세계화에 대한 신화와 진실’(1장),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가?’(2장), ‘자유무역이 언제나 정답인가?’(3장), ‘외국인 투자는 규제해야 하는가?’(4장), ‘민간 기업은 좋고 공기업은 나쁜가?’(5장), ‘아이디어의 ‘차용’은 잘못인가?’(6장), ‘재정건전성의 한계’(7장),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나라에는 등을 돌려야 하는가?’(8장), ‘경제발전에 유리한 민족성이 있는가?’(9장)의 주제를 탐구한다. 이제 이 책의 장점과 단점을 몇 가지 기술하고자 한다.
2. 장점
이 책의 장점은 ‘개발도상국의 관점’, ‘역사적 관점’, ‘중용적 관점’, ‘통합적 관점’ 등 그 관점이 좋다는 것인데 각각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책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개발도상국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필자는 성경적인 관점은, 강자와 약자 사이에 기계적 중립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의 편에 기울어지게 섬으로써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기우뚱한 균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장하준이 개발도상국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장하준의 이런 관점은 더 나아가서 자유무역 이론의 핵심이 되는,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 우위 이론에 대해 탁월한 비판을 가능케 한다.
“리카도의 이론은 절대적으로 옳다. 그 이론의 좁은 테두리 안에서는 그렇다. 리카도의 이론은 정확히 말해 각 나라들이 ‘자신의 현재 기술 수준을 그대로 감수하는 한에서는’ 자신이 비교적 잘 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가 없다.
그의 이론이 통하지 않는 것은 어떤 나라가 보다 고도의 기술을 획득해 대부분의 다른 나라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들을 하고자 할 때, 즉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할 때이다. 새로운 기술을 흡수하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이때 기술적으로 뒤처진 생산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동안 국제적인 경쟁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희생이 따른다. 보다 우수하고 보다 저렴한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선진적인 산업을 발전시키길 원한다면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이다. 리카도의 이론은 현재 상태를 그대로 감수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현재 상태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장하준, 80).
마지막 문장을 정확하게 다시 표현하면, 리카도의 이론은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선진국들을 위한 것이지, 현재 상태를 바꾸려고 하는 개발도상국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자유무역은 선진국을 위한 것이지 개발도상국을 위한 것은 아니다. 장하준이 그토록 치열하게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것은, 바로 그가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의 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을 성경적인 가치가 깃든 책으로 만드는 점이다.
둘째, 이 책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역사적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소위 정사(正史)는 실제 역사를 왜곡하여, 최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를 긍정적으로, 그 전의 통제된 세계화의 시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3) 이런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역사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역사적 비판은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장하준은 역사를 정밀하게 검토한 후에 무역 자유화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이다.”(장하준, 119). 또한 그는 외국인 투자 규제 여부에 대한 문제에서도 역사를 통해 결론을 내린다.
“요컨대 역사는 규제자들의 편이다. 오늘날의 부자 나라들 대부분은 자국이 투자를 받는 입장이었을 때는 외국인 투자를 규제했다.”(장하준, 151).
셋째, 이 책은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감각을 유지하면서 ‘중용적 관점’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장하준은 한국의 성공 비결에 대해, 새로운 유치산업이 발전하여 노련해지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됨에 따라 보호하는 분야를 끊임없이 바꾸어가면서 보호와 개방 무역 정책을 적절하게 혼합한 데 있다고 언급한다(장하준, 131). 그리고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국제 무역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에 이르는 최선의 길은 자유 무역이 아니다. 한 나라가 자국의 필요와 능력이 변화하는 정도에 어울리도록 조정된 보호와 보조금의 혼합 정책을 꾸준히 사용할 때에만 무역은 그 나라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 무역은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에게 맡겨 두기에는 경제 발전을 위해 너무 중요한 사안이다.”(장하준, 132).
곧 그는 보호주의 정책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지도 않고, 무역 자체를 극단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중용적 관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유 무역에 대해서도, “급속하고, 무계획적이며, 포괄적인” 자유 무역을 반대하지, “일정한 정도의 점진적인” 자유 무역에는 반대하지 않는다.4) 곧 그는 모든 자유 무역에 반대하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중용적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적소유권 제도에 대해서도 균형 감각을 요구한다.5) 그의 이런 중용적 관점이 그의 주장에 설득력을 높인다.
넷째, 이 책은 문화와 경제의 관계에 대한 ‘통합적 관점’을 갖고 있다. 장하준은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문화는 변화한다고 언급하면서, 그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경제가 침체하면 문화가 (경제 발전의 관점에서 볼 때) 나쁜 쪽으로 변할 수도 있다. 회교 세계는 예전에는 합리적이고 관용적이었지만, 경제 침체가 수백 년 동안 계속되면서 많은 회교 국가들이 지나치게 종교적이며 비관용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경제 침체와 미래에 대한 전망 부재는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을 더욱 강화하는데, 이는 회교 문화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다. 과거에 번창했던 수많은 회교 제국들에 널리 퍼져 있던 합리적인 사고와 관용적인 태도가 이를 입증한다. 여성 직원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말레이시아 은행의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 말레이시아의 회교도들은 경제 번영으로 인해 합리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장하준, 300).
장하준의 이런 통합적 관점은 새뮤얼 헌팅턴과 무하마드 유누스의 관점과 같다.
“이슬람 사회의 인구 폭발과 열다섯 살에서 서른 살까지의 연령대에 다수의 남성 실업자군이 몰려 있다는 점은 이슬람 내부의 분쟁과 비이슬람을 상대로 한 분쟁에서 모두 불안정과 폭력을 낳는 자연스러운 요인이다. 그 밖의 다른 요인들도 물론 작용을 하겠지만, 이 하나의 요인만으로도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발생한 이슬람 집단의 폭력을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새뮤얼 헌팅턴, 360).
“1995년 뉴욕에서 열렸던 지정학자들의 회합 때, 가난 퇴치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이들 전문가들이 나에게 이슬람 원리주의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 그라민 은행은 그 어느 누구를 특정 대상으로 해서 싸우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서 가난한 사람들은 소액 융자를 받게 됨으로써 이제까지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었던 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럼으로써 지금껏 꼼짝도 않던 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우리 은행의 회원들은 경제적으로 여건이 호전됨으로써 종교원리주의자들이 세운 여러 제한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이다.
회합에 모인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에 예의 주의를 기울였던 까닭은, 이들은 주로 어떻게 하면 종교의 위협을 막을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면 종교적 굴레는 저절로 해소된다.”(무하마드 유누스, 214).
장하준과 새뮤얼 헌팅턴과 무하마드 유누스에 의하면, 경제 침체와 실업과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면, ‘종교 원리주의’ 문제도 상당한 정도로 방지할 수 있다. 이 점은 선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3. 단점
이 책의 단점은 다음 두 가지 정도 된다. 첫째, 이 책은 부정부패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 이것은 명백하게 비성경적인 관점이라고 판단된다.
“만일 부정부패와 같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들이 경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명백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세상사가 단순해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지난 반세기를 돌아보면, 모부투 집권 시의 자이레나 뒤발리에 집권 시의 아이티처럼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경제가 파탄을 맞은 나라들이 있다. 그리고 그 다른 쪽 극단에는 핀란드, 스웨덴, 싱가포르와 같이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하면서,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올린 나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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