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루살렘
본문
오늘 기독교인들의 의식 속에 있는 예루살렘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은 두 번이나 성전이 무너지고 예수님도 계시지 않는 ‘빈 무덤’을 기를 쓰고 가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갈 수가 없는(시간과 돈 중에 후자가 더 부족해서) 나 같은 이는 영화와 책을 찾아보는 수밖에... 영화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영화평을 이곳에 써놓았음)이며 책은 오늘 소개할 바로 이 책 ‘굿모닝 예루살렘’이다. (원제는 ‘예루살렘 일기’같은데 아마도 번역하면서 1988년 개봉한 지금은 작고하고 없는 명배우 ‘로빈 윌리엄스’주연의 역시 명화 ‘굿모닝 베트남’을 차용한 듯)
작가는 캐나다 궤벡 출신의 기 들릴이다. 그는 국제 민간의료 단체 ‘국경 없는 의사회’에 근무하는 부인(의사가 아니라 행정가)을 따라 2010년 8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 예루살렘에서 살았던 경험을 다룬 체류기다.
책은 그가 평범한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예루살렘 사람들이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고통과 갈등, 때로는 모순들을 예리하게 꿰뚫는다. 작가는 예루살렘에 처음 도착한 뒤 가게에 들어가려다 문 앞을 지키는 보안 요원으로부터 “총이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처음엔 이방인에게 거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총을 꺼내놓거나 무기 소지증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자세히 관찰하니 운동복을 입고 조깅을 하는 한 무리의 남자들 가운데 한명은 반드시 긴 소총을 어깨에 메고 있고, 유모차를 끌고 공원으로 나온 가장의 등에도 총이 매달려 있다.
중동발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송아지 때문이라는 지적도 유쾌하지만 날카롭다. 구약 속 솔로몬왕이 여호와를 위한 성전을 만든 예루살렘 구시가지 언덕에는 현재 이슬람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 성전 산에 오르지 못하는데 이는 구약의 율법(민 19장)에 따라 성수와 완전한 적갈색(붉은) 암송아지의 재로 정화 의식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브라함 이래로 그런 송아지는 9마리밖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2002년 모든 조건을 갖춘 송아지가 등장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 살 때 흉터에서 흰색 털이 돋아나고 말았다.(세 살 때 제물로 바쳐져야하기 때문에) 작가는 “그런 송아지가 등장한다면 유대인들이 바위 돔을 부숴버리려 할 것이며 그렇다면 (아랍인들의 반발로) 세계 3차 대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말도 안 되는 미신에 집착하는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우리 안에 이런 모순은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일상적인 테러가 끊이지 않는 도시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새 도시에 정착한 그의 가족이 가장 먼저 익숙해져야 하는 일은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가게를 찾는 일이다. 예루살렘의 기독교계 가게에서는 맥주와 와인을 살 수 있지만 일요일에는 문을 닫고, 무슬림 상점은 금요일에 문을 닫으며 알코올류는 한 방울도 찾을 수 없다. 대형마트는 ‘불행히도’ 유대인 정착촌 안에 있다. 정착촌이란 이스라엘이 전쟁이나 점거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에서 획득한 점령지에 유대인들을 이주시킨 곳이다. 작가는 이곳에서 평소 좋아하던 시리얼을 사려고 하지만 “정착촌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이스라엘의 불법 점거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국제단체 관계자의 말을 떠올리고 아쉽게 발을 돌린다. 그런 그의 눈앞에 장 보따리를 한가득 품에 안은 팔레스타인 아줌마들이 수다를 떠들며 지나간다.
책에는 “1분 1초라도 빨리 가기 위해 차선을 네 번씩이나 바꿔가며 용을 쓰는” 예루살렘의 교통 체증과 일생 동안 돈도 안 벌고 군대에도 가지 않으며 토라(모세오경) 연구에만 몰두하는 극정통파 유대교인들의 우스꽝스러운 풍경,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의 신체적 특징은 귀가 뾰족하다는 것이며 2007년 기준으로 그들의 수가 717명밖에 안 된다는 디테일들이 살아 숨 쉰다. 그 외에도 헤브론의 막벨라굴에 아담과 이브도 묻혔다는 사실과 예수님이 누우시고 부활하셨던 무덤이 오늘날 종파별로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내용들이 나온다.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왜냐고? 만화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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