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사람을 위한 이야기

작성자 외마
작성일 17-08-18 15:08 | 조회 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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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사람에 관한 영화다. 동시에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고뇌하는 한 인간의 마음을 따라간다.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은 이 점에서 헐리우드 영화를 대하는 우리의 흔한 예상을 빗나간다. 뻔한 영웅주의나 감동적인 구조 실화를 전면에 내세우리라는 관객 일반에게 체화된 관습적 사고는 이내 민망함으로 돌아온다. 미국 언론 특유의 영웅 만들기가 아니더라도, 그즈음의 세계적 금융위기를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20091월 뉴욕 허드슨 강에서 발생한 사고 자체만을 독립적으로 떼어두고 보아도, 155명의 생명을 구해낸 기장 체즐리 설런버거(Chesley Sullenberger, 이하 설리”)는 영웅으로 대접받아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카메라는 사건 자체의 긴박감이나 허드슨 강 뒤편으로 희미하게 보여주는 우뚝 솟은 자유의 여신상같은 설리기장의 영웅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설리의 내면을 파고드는 혹시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라면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왜일까?

우리가 언론을 통해 쉽게 부여받는 사건으로서의 기적과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영웅은 어쩌면, 그것이 한편의 이야기로 소비되기에 적절한 방식일는지 모른다. 더욱이 근래에는 언론이 사실관계에 극적인 요소를 부가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사실을 넘어, 수요자가 어떤 감상으로 받아들이게끔 유도하는 장면의 구성, 배경 음악의 사용, 뉴스 전달자의 멘트 등의 장치는 이미 보편적인 것이 되어, 미디어 자본주의 하에서는 이제 어찌할 수 없을 듯하다.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에서도 언론은 시종일관 설리를 영웅화하며, 소위 돈이 되는 콘텐츠로서 소비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하지만 대상으로서의 인간 설리는 언론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악몽으로 되뇔 만치 커다란 중압감을 느낀다. 더욱이 순간적인 판단이 오류였을지 모른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까지 더해지며, 기적적인 영웅이라는 TV 속 존재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의 카메라는 주인공 설리의 내면에 대한 시선을 시종일관 유지하며, 거대한 사건 속 뉴스에서는 전해 받지 못한 한 인간의 고뇌를 되새기게 한다. 그리고 이는 설리가 사람이 누락된 조사위원회의 시뮬레이션을 지적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며, 소프트웨어와 과학적 방법과 기술의 진보 그리고 막대하게 쏟아 내어놓는 데이터와 통계수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 것임을 사람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장 근본적인 것임을 역설한다. 영화 속 구조현장에서 조종사 조합에서 파견된 동료 조종사가 그에게 설리 다친데는 없나?”하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우리의 천박한 예상을 여지없이 빗나간다. “155명 전부가 괜찮다고 확인되면 그 때 내 상태를 말해주겠네라고... 그 대목에서 마태복음 7:12을 떠올린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이 말씀은 예수님의 비판에 대한 교훈의 결론인 동시에 산상수훈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은 우리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잘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사고는 단 208초 동안 일어났으며, 구조에는 단 24분 만이 소요되었고 탑승객과 승무원을 합한 155명 전원이 다 살았다. 설리의 대사처럼 기적이라는 것이 영웅이 아닌 그저 할 일을 한한 인간에 의해서임이 오늘 세월호를 보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파고든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세월호의 그 구조 가능했던 긴 시간과 가버린 청춘들과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는 가족들과 거짓과 갈등을 양산하며 자신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슬쩍 이념갈등으로 떠넘긴 그 정치기술은 참으로 감탄할 만하다. 가장 중요했던 순간인 7시간은 오리무중이나 검찰조사에선 7시간 동안 자신의 진술을 꼼꼼히 밤을 새워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는 소식에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구조해야할 사람들을 고뇌하고 걱정할 때, 누군가의 행동은 우리를 절망케함에 충분했다. 그 사람은 머리를 매만지며 시술 받으며 세월호의 탑승객들을 걱정하고 염려하였을까? 그들의 처절한 생명의 단말마 소리를 들었을까? 그 거짓과 위선의 검푸른 세월을 헤치고 세월호가 죽음의 검은 무게를 안고 우리에게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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