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이히만들

작성자 외마
작성일 17-08-18 15:07 | 조회 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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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유대계 정치 이론가이자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책을 하나 내었다. 먼저 그녀는 나치의 인종청소의 광풍 속에서 가까스로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탈출한 사람이다. 책의 시작은 이렇다. 1960년에 이스라엘의 첩보기관 모사드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했다. 예루살렘으로 압송된 아이히만은 기소되어 1961411일 공개재판이 진행되었는데, 한나 아렌트는 이를 지켜보면서 아이히만에 대한 평론을 통해 자신의 철학사상을 주장하게 된다. 이 책이 바로 오늘날 명저로 평가받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1963)이다. 책의 형식은 아이히만의 재판 참관기이지만, 부제인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가 이 책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아이히만은 슈츠슈타펠 중령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인 학살 계획의 실무를 책임졌던 인물인데, 그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은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시킨 대로만 했을 뿐이라며 자신은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 책이 충격적인 이유는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아이히만이 아주 사악하고 악마적인 인물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매우 평범했다는 점이다.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엄청난 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서 결론을 내린 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쉽게 말해서 악의 평범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악이 딱히 어떤 악마적인 것에 기원하는 게 아니라는 아렌트의 주장은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이 책이 출간된 후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아렌트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에 비판적으로 사고를 하지 않으면 그것 자체가 바로 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아이히만의 사례를 들면서, 아이히만은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던 일이 타인(유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곧 공감(共感)능력의 상실(喪失)과 소통(疏通)의 절대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다. 무엇보다 한나 아렌트가 분석하고 관찰한 아이히만은 권력욕이 세고 명예에 집착하는 인간이었고, 그의 반유대주의 사상이나 나치즘은 이러한 명예욕을 실현시킬 수 있는 수단이었다. 결국 아이히만은 사형 선고를 받고 1962531일 교수대에 서고 말았다. 그의 죄를 전혀 후회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지리한 국정농단 사건의 결말을 파헤치는 특검과 언론과 국회의 노력들을 비웃으며 모르쇠와 책임전가하기에 급급한 전직 최고급관료들과 대통령과 그의 시녀(누가 누구의 시녀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순실과 한 순간 명문대학의 전통에 제대로 먹칠하고 곡학아세(曲學阿世)한 교수들과 삐뚤어진 자본욕에 최선을 다한 재벌들 그리고 나는 시키는 데로만 했다며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고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기계적인 권력지향주의자들과 우리의 잘못과 실수로 진리의 세계관을 가르치지 못하고 망쳐버린 교육으로 생산해 낸 고도의 집단이기주의자들에 의해 절단이 나고 있는 이 불쌍한 대한민국의 상채기와 그 더러운 인간군상들을 보면서 나는 이 책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즈음 나는 생각한다.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하는 교회와 성도들에 대해서 말이다. 예수님은 최고의 공감능력자시며 소통의 대가셨다. 위로가 필요한 곳에 위로를 베푸셨고, 치유가 필요한 곳에 고침으로 다시 삶의 희망을 부여해주셨다. 오늘,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한국교회가 이 사태의 위로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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